朝日報 萬物相

독일어 부활

yellowday 2012. 3. 10. 04:45

입력 : 2012.03.07 23:00

영국인·프랑스인·독일인이 낙타에 관한 글을 쓰라는 숙제를 받았다. 영국인은 배낭을 챙겨 메고 낙타가 사는 사막으로 가 3년 동안 머물며 두툼한 보고서를 써냈다. 프랑스인은 동물원에서 낙타를 우산으로 콕콕 찔러보며 장난을 치더니 집에 돌아와선 낙타를 소재로 유머가 반짝이는 에세이를 써냈다. 독일인은 도서관에서 낙타에 관한 책을 샅샅이 뒤져 읽은 뒤 '낙타의 자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완성했다. 영국인은 경험을 으뜸으로 치고, 프랑스인은 재치를 즐기는데 독일인은 관념 탐구에 진지하다는 우스개 비교론이다.

▶19세기 말 독일어는 프러시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언어였다. 칸트와 헤겔, 마르크스가 쓴 언어였다. 1930년대엔 하이젠베르크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양자역학을 세우면서 독일어는 최첨단 과학 언어가 됐다. 독일어는 나치의 패망과 함께 국제어로서 역할을 잃기 시작했다. 우리 대학만 해도 1998년 75개에 이르렀던 독문과가 50여개로 줄어들었다.

▶독일어를 해외에 보급하는 괴테 인스티투트 본부가 최근 독일어를 배우는 외국인이 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주재 독일문화원의 독일어 수강생이 23만5000명으로 작년보다 7.5% 증가했다고 한다. 특히 경제 위기에 빠진 남유럽 사람들이 독일에서 일자리를 얻으려고 독일어 강좌에 몰려든다.

▶실업률 18%인 그리스에선 독일어 수강생이 지난해보다 23% 늘었다. 스페인에선 25%, 포르투갈 20%, 이탈리아에선 14%씩 늘었다. 독일 경제는 지난해 3% 성장했고 실업률도 6.8%로 통일 이후 가장 낮지만 생산 현장에선 숙련된 인력이 모자란다. 얼마 전 자동차회사 다임러AG가 해외 일손을 뽑는다고 하자 남유럽 네 나라에서 1만여명이 신청했을 정도였으니 독일어 학습 바람이 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선 1993년 이후 독일어 교사 임용 시험이 시행된 적도 없으니 독문과가 취직률이 낮다는 이유로 인기가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남유럽에선 '하늘로 올라가는 동아줄' 대접을 받는다. 독일이 방만한 복지를 손보며 알뜰 살림을 하는 동안 흥청망청 곳간까지 다 비운 남유럽인들이 조국을 떠나려고 독일어에 매달리고 있다. 1960년대엔 우리도 서독을 기회의 땅으로 삼은 적이 있다. 남유럽 사람들이 괴테를 읽을 여유도 없이 '괴테의 언어'로 '스펙' 쌓기 경쟁을 하는 풍경이 안쓰럽다. 우리 사회의 중국어 배우기 열풍도 조금은 씁쓸한 기분으로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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