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6 22:20
지난 일요일 워싱턴에서 유대계 로비단체 '미·이스라엘 공공정책위(AIPAC)' 연례총회가 열렸다. 유대인들에게 눈도장을 찍으려고 워싱턴 거물 정객들이 만사 제치고 달려왔다. 공화·민주당 원내대표, 주요 장관들, 대선 주자들이 연설 기회를 얻으려고 줄을 섰다. 사흘 총회에 하원의원 3분의 1, 상원의원 절반이 참석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첫날 연설에서 "이스라엘 안보는 너무나 신성해서 협상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클린턴이나 부시도 비슷한 연설을 했었다. 그때마다 언론은 '대통령의 충성서약'이라고 비꼬았다. '신(神)의 조직'이라 불리는 아이팍은 회원이 5만명이다. 유대계 미국인 650만에 비하면 적어 보여도, 돈줄을 쥔 큰손들이 아이팍 뒤에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선거자금의 60%가 유대인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1982년 공화당 하원의원 폴 핀들리는 아라파트 PLO 의장을 만난 뒤 "중동문제 해결에 균형 잡힌 정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미국의 대외정책이 이스라엘 쪽에 치우쳤다는 비판이었다. 유대 단체들은 그해 선거에서 핀들리와 경쟁한 민주당 후보에게 후원금을 몰아줬다. 핀들리는 선거에서 져 22년 의정활동을 접었다. 뒷날 핀들리는 '그들이 큰소리친다'는 책을 내 자기가 어떻게 유대 로비에 당했는지 털어놓았다.
▶공화당 찰스 퍼시, 민주당 조지 맥거번과 얼 힐리아드 의원도 반(反)이스라엘 발언을 했다가 선거에서 쓴잔을 마셨다. "세계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할 수 있는 정치인은 이스라엘 의원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2007년 이원복 교수도 만화 '먼 나라 이웃 나라'에 "재미 한인들은 유대인의 장벽에 번번이 부딪힌다"고 썼다가 혼이 났다. 미국 유대단체가 들고 일어나는 바람에 작가는 "본뜻이 아니다"고 해명했고 출판사는 책 재고를 폐기했다.
▶미국·캐나다에만 유대 단체가 3500개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위해 안보리 거부권을 32번이나 행사했다. 그러나 레이건처럼 아이팍의 반대를 꺾고 사우디에 공중조기경보기를 판 대통령도 있다. 2006년엔 하버드대·시카고대의 교수 두 사람이 이스라엘 로비를 비판한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엔 유력 신문, 금융계 큰손, 명문대 석학, 유명 칼럼니스트가 잇따라 '이스라엘 로비의 역효과'를 경고하며, "미국이여, 유대인 로비에서 벗어나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강한 게 언제까지나 좋기만 한 건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