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2 22:54
1610년 갈릴레이는 지구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천체망원경으로 확인했다. 누구든 교회에 맞서면 이단으로 찍혀 화형대에 오르던 때였다. 교회는 명문 파도바대 교수인 그를 잘못 건드렸다 천동설에 대한 의심만 부풀릴까 부담스러웠다. 1616년 교황청은 그에게 "잘못을 시인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비밀 제안을 했다. 제안을 받아들인 갈릴레이는 평생 재갈이 물린 채 살다 죽었다. 훗날 재판 기록은 바티칸 비밀 서고로 들어갔고 아무도 그의 '불온한 주장'을 볼 수 없었다.
▶12세기 성지 순례를 보호하려 만든 템플기사단이 이교도로 몰려 화형당하고 조직은 해체됐다. 그들이 십자가에 침을 뱉고 예수를 부인했다는 것이다. 2001년 템플기사단에 관한 양피지 문서가 바티칸 비밀 서고에서 발견되면서 기사단이 누명을 썼다는 게 드러났다. 16세기 미켈란젤로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벽에 '최후의 심판'을 그린 뒤 밀린 월급을 달라고 지불 독촉장을 보냈다. 이 독촉장도 비밀서고에서 나왔다.
▶에코의 '장미의 이름', 브라운의 '천사와 악마', 반덴베르크의 '미켈란젤로의 복수' 같은 추리물 수십편이 바티칸의 비밀 장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음모 플롯을 짜기에 맞춤하기 때문이다. 반덴베르크 소설에서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이단인 유대 밀교(密敎) 예언자 이름을 몰래 넣는다. 이 비밀을 파헤치는 주인공이 비밀 서고 책임 수사(修士)다.
▶바티칸 서고가 자꾸 음모의 상징처럼 그려지자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5년 "바티칸은 문서 보관소를 비밀리에 운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 뒤로 바티칸은 몇 년마다 보관 문서를 공개한다. 올해도 지난 29일부터 고문서 100건을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갈릴레이 재판 기록, 마르틴 루터 파문(破門) 조서,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기 전에 쓴 편지도 들어 있다.
▶영화에서 바티칸 비밀 서고는 철통 같은 방어 시스템에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갖춘 요새처럼 돼 있지만 실제 모습은 첨단과 거리가 멀다. 양피지 묶음에 쓰인 기록 수만 건, 삐걱거리는 낡은 승강기, 16세기 목제 보관함…. 교황청 살림이 팍팍해질 때마다 이런 전시회를 기획한다고 쑥덕거리는 사람도 있다. '비밀'이라고 하면 사람들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한 번에 100건 정도 속도로 공개하면 바티칸 서고의 '비밀'이 바닥나는 날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