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1 23:48
박지성과 함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고 있는 39세 노장 라이언 긱스는 '세계 최고의 레프트 윙'이라는 평가를 들으며 맨유에서만 32번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다. 그러나 그는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는 한 번도 뛰지 못했다. 긱스는 1991년부터 웨일스 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했는데 웨일스가 한 번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웨일스의 본선 진출이 또 좌절되자 그는 이런 글을 썼다. "내 인생 마지막이 될지 모를 예선전이 끝났다. 많은 동료들이 월드컵에서 뛰는 동안 나는 늘 방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다." 긱스는 이 대회를 끝으로 웨일스 대표팀에서 은퇴했다.
▶2002년 월드컵 때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는 포르투갈,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 2조 예선을 치렀다. 네덜란드는 '토털사커' 창시자 요한 크루이프의 활약 덕에 월드컵에서 두 차례 준우승한 강팀이었다. 네덜란드는 예선에서 꼴찌로 탈락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네덜란드 축구를 월드컵에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네덜란드의 아픔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축구팬들의 비극"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나 공은 둥글고 이변과 징크스가 널려 있는 게 월드컵 무대다. 86년 월드컵 4강 프랑스는 4년 후 예선에서 떨어졌고, 90년 월드컵 4강 잉글랜드는 94년 예선에서 떨어졌다. 94년 월드컵 4강 스웨덴은 98년 예선 탈락했다. 네덜란드의 예선 탈락이 98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가 4강을 했던 탓이라고 한다면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됐을까.
▶한국 축구가 그제 쿠웨이트를 이겨 2014 브라질 월드컵 최종 예선전에 올라갔다. 아시아에 배정된 월드컵 본선 티켓은 4.5장이다. 한국은 일본 호주 등 열 나라가 두 개 조(組)로 나뉘어 겨루는 마지막 예선전에서 각 조 2위 안에 들어야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 조 3위를 할 경우엔 다른 조 3위와 플레이오프를 벌여 이긴 후 다시 남미 지역 최종 예선 5위와 싸워 이겨야 한다.
▶1986년부터 내리 일곱 차례 월드컵 본선에 올라가다 보니 예선 통과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도 있다. 그러나 세상에는 뛰어난 기량을 갖고도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와 팀이 수두룩하다. 우리는 전 세계 203개 팀이 정상을 향해 겨루는 사다리의 아랫자락에 발을 올려놓았을 뿐이다. 혼신을 다해야 위로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편견의 잔인함 (0) | 2012.03.05 |
---|---|
바티칸 비밀 서고(書庫) (0) | 2012.03.03 |
시인의 봄 (0) | 2012.03.02 |
셋째 아이, (0) | 2012.03.02 |
'삶의 질'과 신뢰 (0) | 2012.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