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삶의 질'과 신뢰

yellowday 2012. 2. 28. 06:48

 

입력 : 2012.02.27 23:20

뉴욕의 청년 짐은 빌딩 모퉁이 노점에서 도넛과 커피를 팔았다. 아침·점심에 몰려든 손님들은 줄 서서 기다리다 짜증을 내고 가버리기 일쑤였다. 짐이 혼자 장사하느라 거스름돈 내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는 고민 끝에 지폐와 동전이 가득한 바구니를 내놓고 손님이 직접 계산하게 했다. 손님들은 "내가 신뢰받는구나" 하는 느낌에 즐거워하며 팁을 후하게 놓고 갔다. 장사 시간도 절약돼 매상이 두 배로 늘었다.

▶짐 이야기는 저술가 스티븐 코비가 2009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 소개한 일화다. 책 '역사의 종언'으로 유명한 후쿠야마 교수도 90년대 중반 세계 여러 도시에서 낯선 사람에게 돈 빌리는 실험을 했다. 돈을 선뜻 빌려주는 순위에서 서울 사람들은 중간 성적쯤이었다. 후쿠야마는 저서 '트러스트(신뢰)'에서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능력을 '사회적 자본'이라고 규정하고 사회적 자본 중 으뜸이 신뢰라고 했다.

▶미시간대 잉글하트 교수는 소득과 안정보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쪽으로 가치관이 바뀌는 추세를 '조용한 혁명'이라고 불렀다. 그는 건강·재정·교육을 '복지 지수'로, 만족·행복·소속감은 '즐거움 지수'로 나타내고 '삶의 질=복지 지수+즐거움 지수'라고 했다. 엊그제 OECD는 미시간대 가치조사팀의 연구를 토대로 한국인의 삶의 질이 회원 32개국 중에 31위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특히 집단 사이 포용력과 신뢰 부문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가치조사팀은 '사람들은 대부분 믿을 만한가, 아니면 매우 조심해야 하는가?' '마약중독자, AIDS 환자, 이민자, 동성애자, 종교가 다른 사람, 술주정뱅이가 이웃에 산다면 꺼림칙한가?' 같은 질문으로 테스트했다. 채점 결과 한국은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한국은 정부·사법부·언론에 대한 신뢰도 바닥권이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지나 친구가 있는 사람'의 비율도 형편없었다고 한다.

▶언제부턴가 많은 한국인이 '다르다'는 뜻의 말을 '틀리다'는 단어로 잘못 표현한다. 자기 생각과 다른 남들의 생각이나 주장은 '다른' 게 아니라 무조건 '틀리다'고 보는 데서 비롯된 어법이 아닌가 싶다. 그만큼 우리는 다른(different) 사람, 다른 집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신뢰와 포용력이 부족하다. 그러면 마음이 편할 리 없고 삶의 질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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