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29 22:01
'강물이 풀리다니 강물은 왜 또 풀리는가/ 우리들의 무슨 설움 무슨 기쁨 때문에/ 강물은 또 풀리는가…'. 서정주의 시 '풀리는 한강(漢江)가에서'는 봄의 설움과 기쁨을 노래했다. 해마다 혹독한 겨울을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이 서럽지만, 매서운 추위가 가시고 훈훈한 햇볕이 드니 봄 물결은 마침내 생명의 기쁨을 싣고 오기에 반갑다. 강물은 봄마다 다시 풀려 힘껏 살아보라고 사람들의 등을 두들기는 것이다.
▶시인들은 봄날 풍경 속으로 황홀한 언어를 투사(投射)해왔다. 종달새를 보곤 '반갑구나, 너 쾌활한 정령(精靈)이여'라고 노래한 시인도 있고,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며 나른한 욕망을 풀어놓은 시인도 있다. 어느 시인은 '봄이 온통 달다'고도 했다. 그러나 지는 꽃잎은 삶의 덧없음을 잔인하게 일깨워준다. 4월의 한낮을 '창백한 학살'이라고 탄식한 시인, 봄의 환희와 절망을 '찬란한 슬픔'이라는 모순 어법으로 읊은 시인도 있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시 '봄'을 대표작으로 남긴 시인 이성부가 그제 봄이 오는 길목에서 일흔으로 삶을 마감했다. 그의 시에서 봄은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더디 왔기에 더 큰 기쁨을 안겨주는 자연의 선물이었다.
▶그는 산을 좋아해서 북한산만 1000번 넘게 올랐지만 7년에 걸친 암투병 끝에 눈을 감고 말았다. 부음을 들은 어느 시인은 "봄의 전령사로 빛났던 시인은 갔지만, 그가 묻힌 대지에서 그의 시(詩)들은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며 오래도록 봄 햇살에 빛날 것"이라고 추모의 글을 썼다. 봄기운이 아무리 강해도 죽음을 이길 순 없지만, 순환하는 봄은 부활의 상징이다. 도취하기 좋아하는 시인들이 축제를 벌이기에 적당한 때다.
▶프랑스에선 3월마다 '시인들의 봄' 축제가 14년째 열리고 있다. 보름 동안 극장과 학교, 카페에서 시낭송회가 줄을 잇는다. 미국 시인아카데미도 해마다 4월을 '전미(全美) 시의 달'로 정해 시의 대중화 운동을 벌인다. 지난 겨울은 유난히 길고 추웠다. 남녘에서부터 꽃소식이 올라오는 동안 시를 읽으며 봄날을 맞는 게 어떨까. 창밖에선 꽃망울이 맺히고 우리 마음속에선 언어의 꽃 한 송이가 움트는 기운을 느낄 수 있으리라.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티칸 비밀 서고(書庫) (0) | 2012.03.03 |
---|---|
월드컵 가는 길 (0) | 2012.03.02 |
셋째 아이, (0) | 2012.03.02 |
'삶의 질'과 신뢰 (0) | 2012.02.28 |
휘발유 소비 7% 증가 (0) | 2012.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