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3.08 23:10
"고수레~." 옛 어른들은 들에서 밥을 먹거나 성묘 상을 차리면 밥과 찬을 조금 떼 주변에 던졌다. 거기 깃든 설화가 많다. 홀로 살던 고씨 할머니가 이웃이 한 술씩 도와준 덕에 끼니를 때우다 병들어 죽었다. 마을 사람들은 들일 하다 새참을 받으면 첫술을 떠 "고씨네~" 하고 던지며 혼을 다독였다. 굶는 사람에게 후하게 베풀었던 고씨 부자가 죽자 그를 기려 "고씨례(高氏禮)!" 했다는 얘기도 있다. 조금 억지스러운 설화이긴 하지만 음식은 나눠야 한다는 뜻이 깊다.
▶200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기아(饑餓)와 포식(飽食)'을 주제로 차세대 글로벌 리더스 회의가 열렸다. 일본 대표 몇이 "세계를 감동시킬 아이디어를 내보자"며 지혜를 모아 '테이블 포 투(Table for two)'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세계 인구 67억 중 10억은 비만·과체중이고 10억은 굶주린다. 앞엣사람 한 끼 밥값에서 20엔(300원)을 떼내 뒤엣사람 10억을 먹이자고 했다. 한 사람 밥값으로 '두 사람이 같이 먹는 식탁'을 만들자는 뜻이다.
▶'20엔'은 아프리카 어린이 한 명이 학교에서 먹는 급식 값이다. 이 운동은 이듬해 조직된 비영리법인 '테이블 포 투 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세계 400여개 기업·대학으로 번져 1260만 끼니를 아이들에게 먹였다. 참여 기업들은 직원식당에서 보통보다 300원어치 낮은 칼로리로 영양 균형을 맞춘 메뉴를 차린다. 배곯는 아이도 먹이고 비만도 해결하자는 제안에 호응이 뜨겁다.
▶엊그제 서울서 열린 아시안 리더십 콘퍼런스도 '테이블 포 투' 기준에 맞춘 도시락을 점심으로 내놓았다. 여느 때보다 반찬을 10~15g씩 줄이고 모두 500칼로리를 깎아 도시락 하나에 기부금을 1000원씩 모았다. 도시락을 참석자 900명이 먹고 낸 90만원이 개도국 어린이 3000명의 한 끼 밥값으로 쌓였다.
▶이 운동의 성공비결은 따로 마련된 모금함에 돈을 넣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없다는 데 있다. 원래 밥값에서 칼로리를 줄여 남는 '20엔'을 떼니 지갑을 열지 않아도 된다. 세계의 먹을거리 격차도 줄이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람이 함께 건강해지는 효과도 있다. 고수레 정신이나 테이블 포 투 운동은 같은 마음이다. 지구상에서 '고수레 운동'이 가장 시급한 곳이 휴전선 너머 지척에 있다. 그곳 아이들 먼저 '두 사람을 위한 식탁'에 앉게 되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