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낮술

yellowday 2012. 2. 24. 16:39

 

입력 : 2012.02.22 23:13

중국에선 애주가(愛酒家) 59%가 저녁에만 술을 마시지만 35%는 낮술도 즐긴다고 얼마 전 인민일보가 전했다. 중국에선 특히 공무원들이 공금으로 낮술을 마시는 게 오랜 악습이라고 한다. 허난성(河南省) 정저우(鄭州)시가 지난해 예산을 아끼려고 공무원에게 낮술 금지령을 내렸을 정도다. 모든 중국 관리들이 낮술을 안 마시면 해마다 예산 1000억위안(약 16조원)을 아낀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인의 낮술 문화도 오랜 전통을 지녔다. 조선시대 화가 김후신은 대낮 가을 숲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선비들을 해학적으로 담은 풍속화를 남겼다. 임금과 도성을 경비하는 훈련도감(訓鍊都監)에서도 낮술이 골칫거리였다. 영조가 "장교와 군졸들이 대낮에 술을 마시고 칼을 뽑아들기도 하고, 시장에서 술을 강제로 요구하는 폐해가 심하므로 현장에서 발각되는 즉시 처벌하라"고 엄명을 내렸을 정도다.

▶낮에는 신진대사가 활발하기 때문에 알코올 흡수가 밤보다 더 빠르고, 뇌의 반응도 더 예민하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낮술이 빨리 취하는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낮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2006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건설업과 제조업 근로자 700명을 조사했더니 33%는 작업장에서 낮술을 마시고 재해를 겪었다고 했다. 2007년 부산에선 경찰에 잡힌 음주 운전자의 21%가 낮술을 마신 사람들이었다.

▶올 들어 역주행과 탈선 사고를 네 차례나 일으킨 코레일에서 '음주 근무'가 들통났다. 차량 정비기계를 관리하는 서울의 한 사업소 직원들이 상습적으로 낮술을 마시며 열차 정비작업을 해오다 적발됐다. 직원들은 점심에 중국집에서 고량주와 소주를 배달시켜 마셨다고 한다. 이들은 내부 조사를 받으며 "술을 반입한 것은 맞지만 마시지는 않고 버렸다"고 했다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탈무드는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金)이고, 밤술은 은(銀)'이라면서 낮술은 독(毒)과 같다고 했다. '낮술에 취하면 애비도 몰라본다'는 우리 속담도 있다. 밤에 마신 술은 밤사이 깨지만 낮술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사람을 힘들게 한다. 낮술 한두 잔이 때로 삶의 묘약(妙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코레일 열차 정비 직원들이 마셔 얼큰해진 낮술은 본인뿐 아니라 승객 모두의 운명을 바꾸는 독배(毒杯)나 마찬가지다. 아찔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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