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21 23:12
2007년 부시가 고향인 텍사스주 남부감리교대학에 대통령 기념 도서관을 지으려 하자 교직원과 성직자들이 들고일어났다. "이라크전을 이끈 부시 대통령의 정치 이념이 대학 설립 이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반대자들은 "기념관이 부시의 정책을 홍보하면 어찌 되느냐"고 걱정했다. 이 대학 출신인 부인 로라 부시가 설득에 나섰다. "그럴 일 절대 없다. 기념관 소속 연구원들은 대학 강의를 맡지 않겠다. 비(非)당파적으로 운영하겠다"고 했다. 기념관은 내년에 문을 연다.
▶1980년 대만 총통 장징궈는 아버지 장제스 초대 총통을 기리며 '중정기념당'을 세웠다. 아버지의 본명인 '중정(中正)'에서 이름을 따왔다. 2008년 민진당의 천수이볜 총통은 이름을 바로잡는다며 중정기념당 현판을 '대만민주기념관'으로 바꿨다. 그러나 불과 2개월 뒤 정권을 되찾은 마잉주 국민당 정부는 이듬해 중정기념당 현판을 다시 달았다. 주변에서 시위대는 "장제스는 독재자"라고 외쳤고, 경찰은 철조망을 쳤다.
▶어제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박정희 대통령 기념·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대통령 박정희'와 '인간 박정희'를 함께 보여주는 콘셉트로 설계됐다고 한다. 그의 손때가 묻은 5개년 경제개발계획 메모들, 경부고속도로 구상 스케치, 테이프커팅 가위, 그리고 옷·라디오·망원경·카메라도 볼 수 있다. 큰딸인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은 "아버지 한 분의 것이 아니라 땀과 눈물로 나라를 일군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이 기념관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명분은 "과거와 화해한다"는 것이었다. 반대자들은 "(박정희·김대중) 두 사람의 정치적 앙금을 푼다고 해서 역사적 아픔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했다. 국회는 국고 보조금을 의결했으나 노무현 정부 때 민간 기부금 모금이 별로라는 이유로 취소됐다. 지루한 소송 끝에 대법원이 '취소가 부당하다'고 판결했고, 2010년에야 공사가 재개됐다.
▶미국에는 전직 대통령 기념 도서관이 12개 있다. 개인 돈으로 짓고, 운영·관리는 정부기록보관청이 맡는다. 업적을 꾸미고 규모를 크게 하려는 경쟁 때문에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해마다 200만명이 찾는 명소가 돼있다. 로라 부시도 "거대한 기념관이나 성지처럼 짓지 않겠다. 평범한 인간의 느낌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박 대통령 기념관도 한국 국민에게 과연 '평범한 인간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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