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07 23:05
물감이 어지럽게 뿌려진 가로 3m의 거대한 캔버스는 20세기 미술을 대표하는 미국 화가 잭슨 폴락(Jackson Pollock·1912 ~1956)의 1950년작, '넘버 1 (보랏빛 안개)'(사진)이다. 폴락은 캔버스 천을 틀에 끼우고 이젤에 세운 후, 손목을 움직여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방식을 거부했다. 뉴욕 교외의 버려진 창고를 스튜디오로 삼았던 그는 밑칠을 하지 않은 캔버스를 그대로 바닥에 펼쳐두고 물감통에 담가 둔 나무 막대와 페인트 붓 등을 마구잡이로 집어 들어 물감을 흩뿌리고 던지고 끼얹었다.
폴락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린다'는 동사는 무엇을 그리는지 그 '대상'이 있어야 마땅한데, 그에게는 '대상'이 아니라 다만 그리는 순간의 '행위'만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마치 그의 고향이었던 미국 중서부의 넓은 대지처럼 꾸밈없이 펼쳐진 캔버스 위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온몸으로 물감을 던지는 화가의 모습은 꼭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일평생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던 폴락은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폭력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평온한 자연을 사랑했다. 인정받기를 갈구하는 어린애 같으면서도,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견디지 못하는 은둔형 인간이기도 했다. 감정을 말로 표현할 줄 몰랐던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부터, 오직 몸을 움직여 만들어내는 무작위의 이미지에서 억눌린 내면을 표출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찾은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완성된 회화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그림 속에서 자기 자신과 자연과 그림이 하나가 되는 그 순간이 그에겐 의미 있는 예술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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