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1.17 22:04
루벤스, 마리 드 메디치의 일생
프랑스왕 루이 13세의 어머니이자,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치는 1621년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
(Peter Paul Rubens· 1577~1640)에게 자신의 일생을 그린 거대한 회화 24점을 주문했다. 루벤스는 호사스러운
색채가 흘러 넘치는 장엄한 화면을 통해, 파란만장했던 그녀의 일생을 영광으로 점철된 위대한 신화처럼 미화했다.
그 중 앙리 4세가 곧 아내가 될 마리의 초상화를 처음 보는 장면〈사진〉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 남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큐피드와 사랑의 신 히멘이 초상화를 들고 있고, 프랑스를 의인화한 여인이 앙리 4세의 뒤에서 감정을 부추긴다.
하늘에서는 올림포스 최고의 신 주피터와 유노 부부가 이 모습을 흐뭇하게 내려다본다.
그들의 결혼은 신들이 정해 놓은 운명인 것이다. 갑옷을 입은 채 전쟁에 열중하던 앙리 4세는 초상화를 보는 순간 투구와
방패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림의 내용만 보면 전쟁 끝, 사랑 시작인 듯하지만 사실 진짜 전쟁은 그다음부터였다.
앙리 4세는 마리와의 정략결혼 후에도 정부(情婦)와의 관계를 유지하다, 마리가 왕비 대관식을 치른 다음 날 암살당했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그 배후에 마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그녀는 어린 루이 13세의 섭정으로 정권을 장악했지만,
아들이 성인이 되자마자 축출당한다. 권력을 되찾기 위해 아들을 상대로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외국을 떠돌다 사망했다. 이처럼 잔혹한 현실은 루벤스의 화려한 그림 속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곧 명절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인 일가친척들은 혼기를 넘긴 미혼남녀의 면전에 낯선 이의 초상 사진을 들이댈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가 사랑이 될지 전쟁이 될지는 신도 장담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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