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스토랑과 모텔을 운영하던 서모씨는 몇 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딸과도 떨어져 살아야 했다. 절망에 빠져 지내던 서씨는 조치원 야산에 올라 평소 입에 대지도 않았던 소주 두 병을 마셨다. 그는 손목을 긋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다가 이튿날 새벽 등산객에게 발견돼 목숨을 건졌다.
▶그날 이후 서씨는 "새 생명을 얻었으니 다시 출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노숙인 보호시설에 들어간 뒤 서울시에서 개설한 '희망의 인문학' 강좌에도 등록했다. 난생 처음 대학 교수로부터 소크라테스·헤겔·공자의 사상을 배우고 문학 강좌도 들었다.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고 삶의 목표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는 공공근로로 번 돈을 아껴 한 달에 50만원씩 저축하면서 아이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저축왕으로 뽑힌 노숙인 중엔 한국에 시집왔다가 남편의 손찌검을 견디다 못해 거리로 나선 필리핀 여성이 있다. 잘나가는 영어학원 강사였다가 주식 투자로 재산을 몽땅 날린 뒤 가족과 헤어진 가장,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회사가 부도난 뒤 술로 날을 지새우다 한강에 투신했던 사람도 있다.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행방을 감추고 초등학교 3학년 딸이 교통사고로 앞서 간 뒤 우울증에 걸려 3년간 술에 빠졌다가 재활 치료와 노숙 생활을 반복하던 여성도 있다.
▶인생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 동력은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인간으로서의 자존, 삶에 대한 애착이다. '희망의 인문학' 같은 강좌를 듣고 "다시 한 번 열심히 살아봐야겠다"는 용기와 자활(自活)의지를 얻었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서도 스스로 재활의 계단을 쌓아 가고 있는 이들에게 더 큰 사회적 격려와 후원이 뒤따르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노숙인 문제를 풀 수 있는 힌트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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