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순원의 단편 '송아지'는 시골 소년과 송아지 사이 우정을 그렸다. 돌이는 아버지가 '아주 볼품없는 송아지'를 사오자 실망하면서도 정성껏 키웠다. 6·25가 터지고 겨울에 강물이 얼 무렵 돌이 가족은 송아지를 외양간에 묶어둔 채 피란길에 나서야 했다. 송아지는 울타리를 뚫고 돌이네를 향해 뛰어오다 얇은 얼음장 밑으로 빠지고 말았다. 소설은 '그러한 송아지의 목을 돌이가 그러안고 있었다'고 끝난다. 우리 농촌에서 소는 가축을 넘어 식구였다.
▶전남 구례가 고향인 이시영 시인은 6·25 때 소를 키웠던 당숙(堂叔)의 체험담을 시 '소동무'로 전했다. 지리산에서 내려온 빨치산들이 당숙의 암소를 끌고 산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소가 당숙에게 찰싹 달라붙은 채 한걸음도 떼지 않고 그렁그렁 울어댔다. 신기하게 여긴 빨치산들이 암소의 등짝을 치며 당숙에게 소리쳤다. '어이, 동무. 이 소동무에게 잘해주시구레!'
▶소 값은 떨어지는데 사료 값이 너무 올라 소를 굶겨 죽이는 농가가 잇달고 있다. 젖소가 낳은 수소, 육우(肉牛)는 송아지를 1만~2만원에 팔려고 내놓아도 사가는 사람이 없다. 지난 한 해 사료 값이 17% 오른 데 반해 공급 과잉으로 소 값은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광우병 파동 이후 국내산 쇠고기를 찾는 소비자가 늘어나자 축산 농가가 앞다퉈 소를 기른 결과다.
▶우리나라 축산시장에 알맞은 소 숫자는 한우와 육우 합쳐 260만 마리쯤이지만 이미 330만 마리를 넘긴 상태라고 한다. 농민들은 "정부가 공급 과잉을 방치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엔 구제역 파동으로 수많은 소가 횡사했다. 이젠 소의 목숨 값이 사료 값보다 아래다. 돈이 뭔지도 모르는 소들이 돈 계산에 바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세상에서 굶어 죽고 있다. 김기택 시인이 소의 눈망울을 보고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라고 한탄한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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