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민영교도소 1년

yellowday 2011. 12. 3. 04:20

베트남전쟁 때 미 해군 장교 짐 스톡데일은 비행기가 추락해 포로가 됐다. 그는 하노이 포로수용소에 8년을 갇혔다가 석방된 뒤 전쟁영웅으로 별 셋까지 달았다. 나중에 누군가 그에게 물었다. "감옥에서 견뎌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스톡데일이 대답했다. "근거 없이 낙관과 비관을 오간 사람들이지요. 그들은 막연히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다가 그게 이뤄지지 않으면 절망을 이기지 못해 죽고 맙니다."

▶나치의 아우슈비츠 유대인수용소에서는 1944년 크리스마스부터 새해까지 일주일 사이 전례 없이 재소자 사망률이 높아졌다. 갑자기 중노동이 늘었거나 전염병이 돌아서가 아니었다. 많은 유대인들은 크리스마스가 되면 집에 돌아갈 수 있겠거니, 가냘픈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자 살아갈 의욕을 잃어버렸다.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당시 아우슈비츠에 수용됐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아내와 부모형제 모두를 아우슈비츠에서 잃었다. 프랭클은 자기와 극소수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게 한 힘이 무엇인가를 관찰했다. 그것은 각자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었다.

▶수용소 사람들은 식빵 한 조각으로 나흘을 산 적도 있었다. 신기하게 그런 상황에서도 즉석 음악회나 연극, 시낭송회 같은 것들이 열리곤 했다. 점심시간 막사에 걸상 몇 개를 모아 무대를 만들고 누군가 올라가 아리아를 한 곡 뽑으면 재소자들은 한 끼를 포기하더라도 눈물을 흘리며 귀 기울였다. 프랭클은 절망을 딛고 이처럼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의지를 인간 존재의 가장 중요한 힘으로 보았다.

▶작년에 문을 연 민영 소망교도소에서 그동안 12명이 출소했지만 재범자가 한 사람도 없다고 한다. 보통 교도소 출소자가 다시 수감되는 비율이 22%인 것과 비교하면 일단 성공적이다. 명사(名士) 강연이나 음악·연극 공연 같은 공동체 모임, 자원봉사자 100여명이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한몫했을 것이다. "인생에 더이상 소망이 없다. 죽고 싶다"던 한 재소자는 교도소 '아버지 학교'에 참여한 뒤 "할 수만 있다면 나가서 아내와 딸의 발을 씻어주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인생의 목표와 희망을 심어주고 삶의 의미를 일깨우는 교도 행정의 새 바람이 퍼져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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