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사카린

yellowday 2011. 12. 2. 00:03

여름날 소금땀에 젖어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우물에서 길어올린 차가운 물을 대접에 붓고 팥알만한 흰색 알약 몇 개를 풀었다. 벌컥벌컥 들이켜면 목젖을 타고 넘어가는 알싸한 맛 때문에 잠시 몽롱해졌고, 입가를 훔친 뒤에도 달달한 향이 코끝에 풍겼다. 알약처럼 보였던 것이 인공 감미료 사카린이라는 건 나중에 알았다. 시골에서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 꼬마가 설탕이 귀하던 때 단물을 맛보는 방식이었다.

▶그 맛이 너무 강렬했기에 사람들은 수군댔다. "설탕보다 기가 막히게 달긴 하지만 필시 몸엔 안 좋을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 한국비료가 건설자재로 위장해 사카린 2295포대를 밀수한 사실이 드러났다. 국회에서 이를 따지던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에게 인분을 투척하는 사건마저 터지자 사카린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다. 한때 '사카린 소주'도 나왔지만 발암물질로 의심되면서 90년대 초 대부분 식품에 금지됐다.

▶사카린은 1878년 미국 존스홉킨스대에서 석탄 부산물 콜타르를 공부하던 학생 팔버그가 발견했다. 그는 손끝에서 단맛이 나자 실험실에서 만든 화합물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팔버그와 지도교수 렘센 박사는 논문 2편을 함께 발표했지만 팔버그는 혼자만 특허를 내고 큰돈을 벌었다. 렘센은 "그놈은 불한당이다. 이름만 들어도 욕지기가 난다"며 상종을 끊었다. 사카린은 태어날 때부터 갈등이 깊었다.

▶유럽에서는 소화기관 장애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사카린의 식품 첨가를 자제했다. 북미 쪽은 1977년 캐나다 국립보건연구소가 쥐 실험에서 방광암을 발견하자 유해성 논란이 크게 일었다. 캐나다는 즉각 사용을 금했고 미국도 경고문을 붙였다. 그러나 2000년 국제암연구소와 미국 독성연구프로그램은 사카린이 설치류와 달리 인간에겐 발암 위험이 없다고 밝혔다. 미국환경보호국도 작년 사카린을 유해물질 항목에서 뺐다.

▶엊그제 우리 기획재정부가 사카린 사용 규제완화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요즘엔 미·일·EU·캐나다 등도 사카린을 넓게 허용하는 추세다. 과거 쥐 실험은 인간에게 하루 캔음료 800개를 주입한 것 같은 고농도 실험이었을 뿐이고, 사카린은 칼로리가 없어 비만 위험이 없다는 옹호론도 있다. 그러나 워낙 오랜 세월 발암물질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오락가락했던 터라 정부는 아직 신중한 입장이다. 사카린이 명예를 회복할지 두고볼 일이다.

'朝日報 萬物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권 과열  (0) 2011.12.07
민영교도소 1년  (0) 2011.12.03
감정노동자  (0) 2011.12.02
오사카市長 하시모토  (0) 2011.11.30
면죄부  (0) 2011.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