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공소시효

yellowday 2011. 11. 19. 09:08

2004년 2월 19일 오후 4시 45분쯤 대구시 달서구에서 장모씨가 경찰 불심검문에 붙잡혔다. 그는 1997년 2월 20일 4000만원을 사기한 혐의로 대전 북부경찰서에 의해 수배돼 있었다. 보통은 대전 북부서 경찰관이 대구로 내려가 장씨를 호송해 오면 됐지만 장씨의 경우는 그럴 수 없었다. 장씨에게 적용된 사기죄 공소시효 7년이 이날 자정이면 끝나기 때문이었다. 자정까지 7시간 15분 안에 장씨를 데려와 조서를 꾸미고 법원에 기소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대전지검은 대구 달서경찰서에 장씨를 조사하도록 하고 조사 서류를 팩시밀리로 보내라고 했다. 이 사이 사기 피해자를 급히 검찰청으로 불러 달서경찰서가 보내온 신문 조서를 보여주고 내용을 확인시킨 뒤 달서경찰서에 장씨를 보완 조사하라고 했다. 이렇게 서두른 끝에 공소시효 만료를 40분 앞둔 오후 11시 20분 장씨 공소장을 대전지법에 냈다.

▶공소시효란 범죄가 발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범죄자를 기소할 수 없게 한 제도다. 형사소송법에는 죄별로 1~25년씩 공소시효를 정해놓았다. 법정 최고형이 무거울수록 공소시효가 길어진다. 범인이 붙잡히지 않고 세월이 지나면 범인을 응징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응보(應報) 감정이 약해진다. 증거가 없어져 유죄 입증도 어렵다. 공소시효는 그래서 생긴 제도다.

▶범인이 붙잡혔는데도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처벌하지 않는 것은 정의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1991년 1월 29일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놀이터에서 아홉 살 이형호군이 유괴돼 43일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범인은 형호를 살해하고도 60여 차례나 공중전화를 걸어 부모를 협박하며 7000만원을 요구했다. 이 범인은 2006년 1월 28일 공소시효 15년이 지나, 이제 붙잡혀도 처벌할 수 없다. 2007년 영화 '그놈 목소리'의 실제 사건이다.

법무부가 살인죄 공소시효를 없애기로 했다. 2007년 15년에서 25년으로 늘린 데 이은 두 번째 조치다. 미국·일본·독일도 살인죄엔 공소시효를 두지 않는다. 범죄를 저지르고도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는 범죄자가 작년 말 2만7000명에 이른다. 공소시효 만료는 범죄자에겐 해방이겠지만 피해자 가족에겐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다. 인명을 앗아간 살인범만큼은 영원히 처벌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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