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경 소설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는 비만증에 걸린 사내의 힘겨운 살 빼기를 다뤘다. 그는 "인간의 몸은 철저히 지방(脂肪)을 모아 저장하는 돌도끼시대 시스템으로 프로그램돼 있다"고 믿는다. 빙하기 때 추위를 견디려고 지방을 축적한 원시인 습관이 현대인의 비만증 원인이라는 얘기다. 다이어트를 시작한 그는 와이셔츠를 입으며 "목부터 살이 빠진다"며 기뻐한다.
▶2007년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진은 비만 유전자 'FTO'를 찾았다고 했다. FTO는 허기와 포만감을 조절하는 뇌 시상하부에서 활동한다. FTO를 지닌 사람은 몸무게가 1.6~3㎏ 더 나간다고 한다. 2010년 미국 소크 생물학연구소는 모든 사람이 지방을 몸속에 쌓는 유전자 Crtc3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지닌 사람은 보통사람보다 체중이 평균 3㎏ 더 무겁다.
▶지난 8월 영국·호주 의학자들은 학술지 '랜싯'에 낸 보고서에서 "1970년대 들어 인스턴트 음식과 패스트푸드 산업의 성장으로 비만이 만성질환이 됐다"고 했다. 이들은 미국이 이대로 가다간 지금 1억명인 비만 인구가 20년 뒤 1억650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학자들은 각국 정부가 비만으로 인한 의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비만 퇴치 운동을 벌이라고 촉구했다. 비만을 일으키는 식품업자들에게 '비만세(稅)'를 매기고 TV 광고를 규제하라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그제 발표한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남자 비만율이 36.3%나 돼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거꾸로 여자 비만율은 사상 최저치인 24.8%였다. 여성 비만율이 떨어지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20~30대까지는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하다 50대 이후엔 남자와 비만율이 비슷해진다. 남자는 사회생활이 가장 활발한 30~40대 비만율이 특히 높았다.
▶한국식품연구원이 지난해 남자들만 조사했더니 "비만의 가장 큰 원인은 스트레스"라는 답이 많았다. "음식으로 화를 푼다"는 답도 적지 않았다. 일주일 세 차례 넘게 걷는 남자는 그렇지 않은 남자보다 '항아리 배(腹)'가 될 확률이 17% 낮다. 의사들은 남자들이 아침을 거를수록 살찌기 쉽다고 말한다. 직장 남성들은 하루 섭취 열량의 절반 이상을 저녁에 먹는 '야간식이증후군'에 빠져 있다. 몸속의 원시인을 일찍 깨워 아침부터 먹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