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붕골댁 9.- 티눈 作
“이기 얼마만이고? 주지스님은 잘 계시고?”
어붕골댁은 맘을 굳혔다. 이번 만난 김에 마님이란 딱지를 떼고 꼭 엄마라는 개명을 하리라. 시집와서 배태도 못하고 눈물로 보낸 세월을 말끔히 지우겠다는 작심을 했다. 어붕골댁은 덧문으로 팔을 쑥 내밀고 싹불이의 손목을 듭썩 잡고 방으로 끌어 당겼다.
“우째 살았노?” 싹불이는 방바닥에 엎드리고 넙죽이 절을 했다. 어붕골댁이 기분이 흐뭇했다. 어붕골댁이 부엌으로 나가 쌀 한 줌 씻어 냄비에 앉히고는 꺼 정한 숯불을 입으로 호호 불었다. 그리고 평상에 놓인 등불을 꺼버리고 바깥 동정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다.
방으로 들어와선 싹불이의 거칠한 손목을 움켜쥐고 눈물이 글썽했다. 조금 후엔 밥상이 들어왔다 예나 지금이나 먹성은 좋았다. 뚝배기 된장 하나로 수북한 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어붕골댁은 싹불이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내맘 알아주는 사람은 자식밖에 없다.”
자식이란 소리를 자칭까지 하면서 그렇게 가슴으로 품고 싶었다. 이 때 삽작문 달랑한 요롱 소리가 뎅그렁 거렸다. 어붕골댁이 가슴이 출렁하고 싹불이는 부엌으로 통하는 쪽문에 바짝 다가 앉았다. 사부작한 자죽소리가 댓돌 밑까지 들려왔다. 어붕골댁이 방문을 열고나서면서
“이 밤중에 누고?” “양철냅니더.” “네가 밤에 우짠일고?” “저가 토사강란을 해가지고 토하고 싸고 죽을 판입니더.” “그래서...” “아편 대궁이 좀 삶아 먹을라꼬예.” “우리 집에는 아편이 없다.”
웅크리고 돌아서는 양철 네의 어스름한 뒷모습이 잔뜩 의심스러웠다. 길모퉁이를 돌아 나가는 양철내의 뒤를 밟고 살금살금 미행을 했다. 양철 내가 지까다비 집 모퉁이를 돌면서 약간 주춤거리긴 했어도 곧장 자기 집으로 들어가기에 맘이 조금 놓였다.
그래도 어붕골댁은 미심쩍어 고개를 갸웃했다. 어붕골댁은 돌아와 미지근한 아랫목에 손바닥을 들이대면서 갑자기 잠자리 걱정이 되었다. 행랑채 싹불이 방은 온갖 잡동사니로 해묵은 먼지투성이고 사랑방은 나지막한 봉창이 사방난달로 터져 귀가 밝아 숨소리도 번져 나갔다. 그렇다고 어붕골댁이 부엌바닥에 새우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이사람 보게... 이 냉골 방에 우째 잘라카노?” “괜찮습니더.” “그라마 모자간에 한방에서 자자. 절깐 방은 뜨시나?” “예.”
방은 천정이 높아 웃풍이 세고 아랫목만 미지근했다. 어붕골댁은 싹불이의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 주고 윗목에 놓인 콩나물시루에 두어 바가지 물을 붓고 밖으로 나가 어둠구석을 어슬렁거리며 삽짝 밖을 살펴보았다.
늦가을 바람소리가 일어서고 집 뒤안에서 살쾡이 암수가 시끄러울 뿐 인적 끼는 없었다. 싹불이는 속옷을 갈아입고 먼저 누워있었다. 어붕골댁은 꺼먼 외투 하나를 찾아 싹불이 발목을 감싸 주고 윗저고리만 벗고 이불 속에 들었다. 까무락한 호롱불이 꺼지고 매캐한 석유 냄새가 잠시 코끝을 스쳤다.
싹불이는 나이 스무 살이 넘도록 안방에 누워보기는 처음이다. 어붕골댁도 남편과 사별한지가 벌써 칠팔년이 되었고 나이도 오십 자리를 깔았다. 어붕골댁이 나지막한 소리로 “지난봄에 본목 한필 보냉거 잘 받았나?” ................. “예.” “절깐 밥은 꽁보리밥이가 다문다문 쌀이 좀 썩였드나?”....10부에 계속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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