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친구 作品

<단편소설> 어붕골댁 6.- 티눈 (김규권) 作

yellowday 2011. 8. 26. 01:40

 


어붕골댁 6.- 티눈 作

언제나 파장은 썰렁했다.
옹기전에 그늘이 내리고 장꾼들이 드문했다.
장터에서 박진 나룻터로 이어지는 신작로엔 소달구지 육중한 바퀴가 자갈길을 투덜댔다.
가람부락으로 가는 소달구지다.
불미골 사는 삿갓쟁이랑 죽전부락 조리쟁이 여편네가 부품한 도붓짐을 달구지에 얹어놓고 달랑걸음으로 따랐다.
그들은 장터를 떠나면서부터 어붕골댁 얘기를 신작로에 쭉 깔았다.
삿갓쟁이가 소달구지 주인에게 계속 얘기 속을 파고들었다.

“싹불이라 카는 사람이 어붕골댁 머슴잉교? 자식잉교?”
“글씨요 머슴이라 카마 머슴이고, 자식이라 카마 자식이죠.”
“씨도 다르고 배도 다른데 우째 자식이라 카능교? 석세비 씨도 안 먹히는 소리지.”

“싹불이가 열두살 되던 해 산중 절간에서 임노인이 꼴머슴으로 줏어 왔거든.
나이 스무살이 넘도록 새경 한섬 없이 한지붕 밑에서 자랐는데 우째 머슴이라 카겠능교?”
“그래도 그렇지 민적에도 없고 족보에도 없는데 자식 취급을 할까?”

“어붕골댁이 양반 삐간지 하나 믿고 산골 어붕골에서 시집와서 가람부락에 눌러 앉았지만
배태도 못하고 젊은 나이에 서방까지 잃었는데 문중에서 삼종 사종 데려다가 백골양자 디릴라 카겠능교?”
“그것 참 까마군지 깐챙인지 햇갈리네.”

조리쟁이 여편네도 종종걸음으로 따라붙어 말문을 열었다.
“싹불이가 글눈은 좀 틔웠능교?”

“진서는 없고 언문께나 쪼깨이 했지 어붕골댁이 햇각시 때
순사들 몰래 마을 조무래기들과 처자들을 물물이 불러다가 야학을 열었지.
"가" 자 밑에 기역하면 "각" "가" 자 밑에 행 하면 "강" 밤이면 어붕골댁 안마당에 등불이 피고
그 덕에 더러 무지랭이를 면하고 지 앞은 근근이 가리지.”

십리길을 끌고 온 얘기가 가람부락 들목에서 갈라졌다.
삿갓쟁이와 조리쟁이 여편네는 달구지 위의 물건들을 챙겨 지게에 지고 어깨에 걸친 채
오릿 길이 늘어 진 박진 강나루까지 동행길이다.

날궂이를 하려는지 서산머리에 잔뜩 해구름이 짙었다. 두 사람은 매장 치는 장돌뱅이여서
오가는 말에 스스럼이 없었다.
“죽전댁은 어붕골댁 사정을 좀 아능교?”
“들은 얘기사 많지.”
“그라마 싹불이가 도망거지 한 얘기부터 꼬랑대기를 잇아 보소?”

“그랑께네 어붕골댁 시어른이 지까다비 한테 상투를 잘리고 이튿날 새벽에 행낭 서까래에 목을 달고 죽었다요.
그날 새벽에 만당 까마구가 마실을 니리다 보고 까악 까악 지빈시럽게 울었다요.
어붕골댁이 아무리 장심이 씨다케도 여잔데 그 꼴을 보고 얼매나 시껍을 했겠능교?”

조리쟁이 여편네는 어깨에 걸친 조릿짐이 홀가분한지
얘기가 팔랑개비처럼 가벼웠다.   ..........7부에 계속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