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친구 作品

<단편소설> 어붕골댁 4.- 티눈 作

yellowday 2011. 8. 26. 01:39

 



어붕골댁 4.- 티눈 作


“니 어붕골댁 머슴 싹불이 본적 있제?”
“도망가고는 한번도 못 봤습니더.”

지까다비는 금방 말을 바꾸어 솔깃한 사탕발림을 했다.
“오늘밤에 읍내 장터에 가설극장 들어 온거 알고 있나?”
“예.”
“니 말시마이 신파극 좋아 하제?”
“예.”
“니한테 입장표 한장 주마 갈키 줄래?”
“통 모릅니더.”
지까다비는 돌이를 앞세우고 소 목줄을 바짝 거머쥔채 주재소 쪽으로 몰고 갔다.

나락메뚜기 톡톡 살이 오르고 풀색 짙은 웅덩이엔 하늘이 깊었다.
육칠월 한창 벼가 필 때만 해도 봇도랑 진굼논에서 뜸북새가 ‘뜸, 뜸, 뜸북’ 센박 여린박 깔아가며
모가지가 뚝뚝 뿌러지게 울었다.

그 무렵 마을에서 대대로 말뚝 박고 살아온 칠성이는 마을 앞 진굼논 너말 반지기에 명줄을 걸고
더위를 짊어진 채 해종일 논두렁을 오갔다.
그는 농사에 애살이 많았다.

그런 그가 어느 날 하늘 땅 갈아엎고 가을을 통째로 버린 채 사라졌다.
지까다비의 해묵은 곱장리를 갚지 못해 여러 해 골머리를 앓다가
지까다비 집에서 배내기로 몰고 온 암소 한 마리를 몰래 팔아 야간도주를 했다.

그가 서성거리던 논두렁엔 허수아비들의 잔치가 벌어졌다.
뒤로 잿적한 놈! 옆으로 비딱한 놈! 허허치고 웃는 놈!
그들은 모두 지까다비가 세워놓은 몸짓들이다.

그놈의 눈에 한번 밟히는 날엔 징병이다 보국대다 하여 마을을 떠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조상들의 등골같은 고향을 버리고 떠난 사람들은 어느 산골 화전민이 되어
척박한 땅에 씨감자를 넣었는지, 아니면 어느 산중 화적떼가 되어 얼굴에 달마상을 그렸는지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신식 글께나 배운 놈들 또 귀땋머리 하고 갈롱께나 부리는 가시내들도 일본 바람을 타고
기미가요를 부르면서 우쭐거렸다.
어붕골댁은 이런 눈꼴 시런 일에 속에 천불이 끓어올랐다.

“아이구 더러바라. 조선놈은 씰개도 없나?”
그런 축들은 어붕골댁과 마주칠 때면 시무룩하거나 더러는 먼눈을 팔았다.

닷새 장날이면 읍내 장터가 붐빈다.
그곳엔 세상을 살아가는 온갖 풍물이 뜬다.

한 장 각설이 패가 시장 바닥을 쓸면서 지나가고
옹기전에 반그늘이 내릴 쯤엔 장돌뱅이 얘기꾼 ‘우백호"가 나타난다.
그는 매장 치는 장돌뱅이다.

그는 묘터를 보는 풍수여서 알음알이가 넓고 오나가나 그저 술이라면 거적자리도 좋다.
조금 덜렁거리긴 해도 천성 타고 난 얘기꾼이어서 천상에 별을 따고 구름 잡는 얘기라도
씨부렁대면 사람들은 우백호 쪽으로 불티같이 모여들었다.
오늘도 옹기전에서 얘기 보따리를 풀었다.
또 어붕골댁 얘기였다.        5부에 계속...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