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친구 作品

<단편소설> 어붕골댁 1.- 티눈(김규권) 作

yellowday 2011. 8. 26. 01:35




어붕골댁 1.- 티눈 作

오뉴월 밤 후텁지근한 날씨마저 짜증스럽다.
“망할 놈의 세상 언제 쯤 하늘땅이 딱 맞붙어 버릴고?”

어붕골댁이 분을 삭이지 못하는 밤엔 마당 평상끝에 앉아 하늘을 지그시 씹었다.
평상 위에는 밤마다 유리등불이 켜져 있고 어스름한 불빛이 마당을 적시고
행낭 서까래까지 번져 올랐다.

비가 내리는 밤이면 등불은 빈 마굿간 기둥에 목을 단다.
그럴 때도 행낭 서까래 밑이 훤하도록 잔뜩 심지를 돋웠다.
삼경을 넘긴 등불에는 가끔씩 풍뎅이 한마리가 빙글빙글 돌면서 불춤을 추었다.
이미 가세가 기울어진 흉가라고 사람들은 내왕이 뜸했고
누구 한사람 다담받게 말을 건네는 사람도 드물었다.

어붕골댁은 지금이사 망단의 나이에 삽짝 출입이 뜸해도 햇각시 적엔
마을에 궂은 일 좋은 일 마다않고 섭두리를 해주던 마당발이였다.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어느 총중엘 가도 한 마리의 학이였다.

남편이 일본 땅 화태 모집에 끌려가서 죽은지도 벌써 여러 해다.
어붕골댁과 왜놈 앞재비 지까다비 사이에 대를 잇는 앙금은 그 엉거럼이 너무 컸다.

어제보다 오늘 더 무성한 얘기들이 근동 부락으로 불티처럼 날았다.
마을에서 서너 팔매 떨어진 신작로가에 주재소가 있다.

양력 초하루 보름이면 어김없이 공습 훈련이다.
주재소 종탑에서 사이렌 소리가 울리면 마을의 까무락한 등잔불이 하나씩 둘씩 꺼지고
만당집 개 짖는 소리만 까맣게 굴러 내렸다.

“쿠수 케이호! 불꺼라 불!”

방공훈련이다. 장작개비처럼 뻣뻣한 뭇놈들의 목소리가 골목을 누비고
지까다비 놈의 부랑한 목소리가 한통을 친다.
어붕골댁이 마당을 서성거리면서 궁시렁거렸다.
“씨빠질넘들 지랄삥하네 배액지 촌넘 겁준다고 '불꺼라 불'!”

지까다비의 목소리가 어붕골댁 삽작문에 걸렸다.
평상위의 등불이 고집처럼 버티고 있었다.
어붕골댁이 또 배난 소리를 했다.
“야 이놈아 어지간히 설치라!”
“뭣이 우째 천황읕 무시하고 뒤질라꼬 환장을 했나?”

“삐 이십구가 눈깔이 멀었다 카더나? 경성 피양 놔두고, 이 굼짚은 곳에 폭격한다 카드나?”
이 때 옆집 굴말댁이 잽싸게 달려와서 평상위의 등불을 꺼버리고 돌아섰다.
지까다비가 돌아서자 옆집 굴말댁이 두툼한 목소리가 담장을 넘었다.  ...2부에 계속  yellowday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