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붕골댁 3.- 티눈 作
지까다비는 왜놈 앞잡이로 마을의 저승사자 쯤 되었다. 사람들은 지까다비를 천석꾼 살림이라 해도 그건 좀 부푼 소리였다.
그의 선친인 ‘운보’가 가람 면장을 할 때 친일을 하면서 조선사람 등을 쳐서 긁어모은 재산이다. 운보가 면장을 할 때는 성주단지에 암죽거리 알곡 한줌도 감출수가 없었다. 그런 놈을 죽고 난 후에 마을 포중에다 선적비를 떡 벌어지게 세워놓았다.
비석은 면장과 순사부장이 건립추진 위원장이 되고 마을 사람들의 다수가 후원자로 되어 그 이름이 촘촘히 새겨져 있었다. 비석을 세울때만 해도 마을 사람들은 지까다비 앞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고 돌아서서 쪼잔한 소리들을 했지만 어붕골댁 시어른 임노인은 “일본 천황밖에 모르던 놈을 마을 포중에다 비석을 세운다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골목바람을 휘젓고 다녔다.
나이 칠순이 넘은 노구지만 왜놈들에게 호락호락 하는 기질이 아니어서 지까다비 한테는 만만찮은 존재였다. 마을 사람들은 임노인을 가리켜 "불칼이 노인" 으로 별명을 달았다.
밥술께나 뜨고 말께나 하는 사람들도 지까다비의 눈빛만 바라보면서 어정어정 세월의 끝자락을 쥐고 따랐다.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고 살아남는 세상이였다. 낮 열두시 오종이 불면 사람들은 띄엄띄엄 선 자리에서 일본 천황을 위하여 황국신민으로 고개를 숙이고 묵념을 했다.
더러는 논두렁에 살짝 똥참외처럼 숨어 버리고 또 엉거주춤이 키를 낮추곤 했다. 이럴 때는 지까다비 눈알이 뱅글뱅글 돌았다. 용케도 한 놈 걸려들었다. 사동댁 꼴머슴 돌이다.
조막무시 만 한 놈이 암소 등을 타고 까딱까딱 마을을 빠져 나오면서 “소탄놈도 껄떡, 말탄놈도 껄떡, 내 좆도 껄떡!” 한참 우쭐거리다가 대등겼다. 돌이는 놀라서 움찔했다. 소 등에서 내려 지까다비 앞으로 다가 서면서 꾸벅 절을 했다. “니 오포소리 들었나, 안 들었나?” “들었습니더.” “와 일본 천황한테 고개 안 숙이노?”
“....고개 숙이마 어붕골댁이가 내 봉알을 깔라 캤습니더.” “과부가 니 봉알까서 머할라 카드노?” “............ ” “어붕골댁이 지 정신이 아니고 약간 미친거 니 모르나? 주재소 가서 순사 칼맛 좀 볼래?” “차라리 여기서 볼때기 맞을랍니더.”
“니 히노마루 일본 깃빨 알제. 우째 생깃드노?” “얼굴 한복판이 씨뻘겋게 달아 올랐습니더.” “요것봐라. 시뿐 남기 불 탱군다.”
지까다비는 돌이 귀를 잡고 당겼다 놓았다 고무줄처럼 다루었다. 늙다리 암소는 두렁콩을 질금질금 뜯어 먹다가 찌까다비 발길에 콧등을 세게 채였다. .......4부에 계속 yellowday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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