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프리어 갤러리의 한국실은 그동안 20평 규모에 30여점만 전시되어 왔다. 중국·일본에 비해 형편없이 빈약해 보였지만 질은 아주 높았다. 특히 찰스 L 프리어가 일본에서 수집한 분청 다완(茶碗)이 많았다. 일본 다인(茶人)들은 일찍부터 분청사기에 매료되어 우리 분청을 이도(井戶), 고히키(粉引), 하케메(刷毛目) 등으로 세분하며 자기들 식으로 불렀다. 그중 '미시마(三島) 다완'(사진)은 귀얄분청으로 천연스러운 멋을 지닌 명품이었다.
- ▲ '미시마(三島) 다완'
20년 전 이야기다. 아침 일찍 이 미술관을 찾아가니 한국실 앞에서 제복을 입은 흑인 경비아저씨가 눈웃음을 보냈다. 나는 이 분청 다완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는데 흑인 경비아저씨가 다가와 "당신도 분청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놀랍고 기쁜 마음에 그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는 체험적으로 동양도자에 문리가 터 있었다. 25년 전 그가 처음 이 미술관에 취직했을 때는 도자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단다. 그러나 몇 해 동양실에 근무하다 보니까 도자기가 나라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단다. 처음엔 중국도자기가 좋았는데 권위적이라고 느껴지면서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그 대신 형태가 깔끔한 일본도자기에 심취했단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일본도자기는 가볍다는 인상을 주며 싫증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분청사기는 처음엔 예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보면 볼수록 자기 같은 사람을 위해 만든 듯한 친근감이 생겨 요즘은 주로 한국실에 와서 경비를 서게 되었단다. 그리고 오늘 퇴근하면 자기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와 나눈 분청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며 좋아했다. 인생도처 유상수(人生到處 有上手)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외국 박물관 한국실 종합 지원사업'을 실시해 오는 10월이면 아주 좋은 위치에 넓은 한국실을 갖게 된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으니 그 흑인 경비아저씨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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