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 국보순례

[112] 쾰른의 나전칠기 경상

yellowday 2011. 6. 2. 09:41

나전칠기 경상

지금 쾰른의 동아시아미술관에서는 독일의 10개 박물관에 소장된 약 6000점의 한국유물 중 116점이 출품된 '한국의 재발견'전이 열리고 있다(7월 17일까지). 한국국제교류재단 주관으로 지난 3월에 개막된 이 한국미술특별전은 2013년 2월까지 라이프치히, 프랑크푸르트, 슈투트가르트 등 4개 도시를 순회하며 열린다.

전시 도록을 받아보니 고려불화, 상감청자, 서원아집도 등 명품들도 적지 않고 한국 유물들이 독일에 전래된 과정이 소상히 밝혀져 있어 많은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그 중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쾰른 동아시아박물관 소장의 조선후기 나전칠기 경상(經床·사진)이다.

경상은 원래 절집에서 스님들이 불경을 읽을 때 사용하는 앉은뱅이책상으로 방석 위에 앉아 책 읽기 알맞게 나지막하고 천판(天板)이라 불리는 머리 판은 책 한 권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한 크기이다. 양반집 사랑방가구의 서안(書案)과 기능이 같지만 서안은 선비 가구답게 아주 심플한 데 비해 경상은 불화만큼이나 화려하다. 머리 판의 양끝이 살짝 말려 올라가고 상다리는 호랑이 다리[虎足], 또는 개다리[狗足] 모양으로 유려한 곡선을 이룬다.

경상은 절집뿐만 아니라 궁궐과 양반집에서도 사용되었다. 생활문화 속에는 화려취미라는 것도 있게 마련이어서 질박한 서안과는 별도로 멋스러운 경상도 즐긴 것이다. 이 나전 경상을 보면 천판에는 넝쿨무늬 테두리에 산수인물화를 그려넣고 상다리에는 아름다운 꽃무늬를 정밀하게 새겼다. 호족형 다리는 아래로 내려오면서 안으로 구부러지는 유연한 S자형을 이루다가 발끝에 와서는 다시 밖으로 살짝 내밀며 마감되었다. 특히나 이 경상은 상다리를 안으로 접어 보관하기 유리하게 만들었다. 상다리가 접히는 이런 나전 경상은 일본 교토의 고려미술관에도 한 점 있다. 조선시대 분들은 이처럼 알게 모르게 멋스러움을 한껏 즐기는 면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