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백나한도'
외국의 미술관에 소장된 한국미술품 중에는 한국미술사의 빼놓을 수 없는 명작도 많지만, 국내에는 전하지 않는 희귀한 미술사적 사료도 적지 않다. 그 하나의 예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인 라크마(LACMA)의 16세기 '오백나한도'(사진)이다.
조선왕조는 유교를 주도적인 이데올로기로 삼고 강력한 폐불정책을 실시하여 불교 미술이 쇠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000년을 이어온 불교의 전통이 강압적 정책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1501~1565)는 섭정을 하면서 불교를 비호하여 1550년에는 승과(僧科)를 부활하고 보우(普雨) 스님 주도하에 서울 봉은사, 양주 회암사 등을 재건하였다. 이때 조선불화의 명작들이 탄생한다.
문정왕후는 나라의 평안, 왕의 무병장수, 자손의 번영을 위해 발원하며 500폭의 나한도를 제작한 바 있다. 그중 현재 전해지는 것은 제153나한 덕세위존자(德勢威尊者)를 그린 라크마 소장의 '오백나한도'뿐이다. 오백나한도는 고려시대에도 성행했지만 이 작품은 고려불화와 달리 불교도상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반 감상화의 면모가 강하게 들어 있다. 바위에 걸터앉아 두루마리 경전을 읽고 있는 나한은 본래 선비가 그려진 '송하인물도'를 연상케 한다. 화면 위로는 멋진 소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는 운치가 있고 대상의 묘사가 정확하고 채색도 아주 품위 있다. 흔히 조선불화는 고려불화에 비해 그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이처럼 전혀 다른 미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화가의 이름이 밝혀져 있지 않지만, 영암 도갑사의 '관음32응신도'(1550년), '회암사 약사삼존도'(1565년), 미수 허목이 '이상좌(李上佐)의 불화'라고 증언한 스케치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어 나는 비록 '감(感)'이지만 중종 때 노비출신 화가인 이상좌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작품은 작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개관 백주년 특별전에도 출품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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