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부 / 김시습
천성은 본디 맷돌 사이에서 왔으나
둥글고 빛나서 동산에 뜬 달과 똑같네.
용을 삶고 봉황을 구운 진미보다는 못해도
머리 벗겨지고 이 빠진 노인에게는 제일 좋구나.
노인에게는 천하진미보다 부드러운 두부가 더 좋은 것이라고 재치 있게 표현한 이 시는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이
다섯 살 때 지은 시다. 길을 가는 김시습에게 한 노파가 두부를 주자 그 감사의 표시로 지은 시로, 이 시 등이
널리 퍼져 이후 김시습은 오세(五歲) 신동(神童)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물론 한자로 쓴 한시(漢詩)다.
이처럼 조선 시대에 아이들이 쓴 시는 동몽시(童蒙詩)라 하여 어른이 쓰는 일반적인 시와 구별하였다. 아동을 지식이
별로 많지 않다 하여, 동몽(童蒙)이라 불렀으니 동몽시는 요즘의 동시에 해당하는 말이다. 조선 시대에는 어릴 때부터
시를 쓰는 것이 교양의 하나였으나 아이들에게는 엄격한 격식을 강요하지 않아 비교적 생각대로 자유롭게
표현하였던바, 김시습의 시처럼 성장한 후의 시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발상을 볼 수 있다.
김시습뿐만 아니라 율곡 이이, 백사 이항복, 다산 정약용 등 저명한 학자와 정치가들이 어린 시절에 쓴 한시는
비교적 알려진 편이나, 그 외에도 옛 아동들이 쓴 시는 상당히 많다. 수십 편이 넘는 한시를 써서 아동 시인이라
불릴 만한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작품이 남아 있지 않고, 시인의 이름도 잊혀졌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들은 대부분 죽은 후에 문집을 남겼지만 어린 시절의 작품은 거의 수록하지 않았다.
성인의 기준으로 유치하다고 평가절하하고, 습작이나 미완성이라는 이유로 버린 것이다.
이제 안대회 교수의 감식안과 애정 어린 손길로 옮겨져 빛을 보게 된 대부분의 시들은 한 편 한 편이 경탄을 자아내는
빼어난 작품들이자 소중한 유산이다. 보림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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