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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평조사(淸平調詞) 1, 3 / 이백李白 (701 ~ 762)

yellowday 2018. 7. 7. 16:34


사진: 당 현종과 양귀비 / 중국 시안 화청지


청평조사淸平調詞 (1) 성당盛唐 이백李白 (701 ~ 762)

 


운상의상화상용 雲想衣裳花想容이요
춘풍불함로화농 春風拂檻露華濃이라
약비군옥산두견 若非羣玉山頭見이면
회향요대월하봉 會向瑤臺月下逢이라

청평조의 노래 (1)

 

구름보니 옷이 생각나고 꽃을 보니 얼굴이 생각난다.

봄바람이 난간 스치니 이슬 빛이 농염해진다.

만약 군옥산 위에서 만날 분이 아니라면

필시 요대 달 아래서 만난 분일 것이다.

 

: 이슬, 양귀비楊貴妃를 비유했다.

若非: ‘만약 ~ 아니라면의 뜻이다.

군옥산羣玉山: 신녀神女 서왕모西王母가 산다는 옥돌로 된 산.

: 한시漢詩에서 반드시’, ‘필히를 뜻한다.

: 한시漢詩에서 그 전에 ~했을 것이다를 뜻한다.

요대瑤臺: 신선神仙이 사는 동네


 

청평조의 노래라는 이 작품의 형식은 시와 사의 혼재 형태이다

이를 시라고 한다면 칠언七言의 악부시樂府詩로 볼 수 있고, 라고 한다면 사의 추형雛形(맹아 형태)인 

초기문인사初期文人詞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은 <전당시全唐詩>에도 수록되어 있고

<전당오대사全唐五代詞>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시라고 간주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작품의 제목에 해당하는 청평조사는 악보에 해당하는 사패詞牌 또는 

사조詞調작품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이것이 단지 음악성을 표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청평조사를 사로도 간주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당대의 사패를 수록한 <교방기敎坊記>에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이백의 청평조사는 당시 새로운 문학 형식인 사가 흥기하는 과정 속에 문인들이 사의 창작을 시도하면서

시에 사의 형식이 도입되어 양자가 공존하는 점이적漸移的인 무대에서 탄생한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청평조사3인데, 이는 궁중행락사와 더불어 이백이 743(혹은 744)의 어느 봄날에 장안에서 벼슬할 때 

당 현종의 명을 받들어 지은 노래이다. 양귀비와 함께 궁궐 안 침향정沉香亭 앞에 만개한 모란꽃을 구경하던 현종이 

좋은 꽃을 감상하고 어여쁜 왕비가 곁에 있는데, 어이 낡은 풍악을 울리겠는가. 마땅히 새 노래를 지어 부르리라” 

하고서, 이백에게 이 청평조사를 짓게 하고, 당시의 명창名唱 이구년李龜年으로 하여금 노래 부르게 하였다고 전한다.

   

시인은 제1수에서 도치법倒置法을 사용해 양귀비의 옷을 보니 하늘의 채색구름 생각나고, 얼굴을 보니 화려하게 핀 모란이 

생각난다며 양귀비의 외모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고 있다. 특히 두 사람이 사랑을 군옥산羣玉山과 요대瑤臺를 제시하여 

양귀비를 강림한 여신에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두 사람의 운명적 관계에 대한 직접적 노출을 자제하며 

우회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면밀한 표현의 극치이다


청평조사淸平調詞 (3)

성당盛唐 이백李白 (701 ~ 762)

 

명화경국량상환 名花傾國兩相歡이요
장득군왕대소간 長得君王帶笑看이라
해석춘풍무한한 解釋春風無限恨이요
침향정북의란간 沉香亭北倚闌干이라

 

청평조의 노래 (3)

 

이름난 꽃과 미인이 서로 기뻐하고

군왕은 웃음 띠고 오랫동안 보아 주는구나.

(양귀비가) 봄바람에 끝없이 일어나는 한을 풀어버린 채

침향정 북쪽 난간에 기대어 서있다.

 

名花: 모란을 가리킨다. 오대五代 왕인유王仁裕(880~956)가 당 현종 시대의 여러 일화를 엮은 <개원천보유사開元天寶遺事>에는 양귀비에 얽힌 여러 가지 꽃이 나오는데, 그 중에 하루에 여러 번 빛깔과 향기가 변했다는 침향정沉香亭 앞 목작약木芍藥, 현종의 한을 풀어주었다는 금원禁苑의 천엽도千葉桃, 그리고 향기가 술을 깨게 한다는 화청궁華淸宮의 목작약木芍藥, 술이 깨지 않은 새벽, 양귀비가 후원後苑에 나가 맺힌 이슬을 마셨다는 꽃나무(花樹) 등에 관한 기록들은 이백의 청평조사’ 3의 내용과 밀접하게 호응하고 있다.


傾國: 경국지색 양귀비를 뜻한다.

帶笑: 웃음을 띠다.

沉香亭: 장안長安 경선궁慶善宮 안 용지龍池 앞에 있는 정자

3수는 봄날 침향정 앞에 화려하게 피어난 모란을 배경으로 한 양귀비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작품이다. 그 아름다움은 신화나 옛이야기, 혹은 꿈속의 여인처럼 신비롭고 고귀하다. 시인은 현종과 양귀비가 침향정의 북쪽에서 봄꽃을 감상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요염한 것이 모란이다. 늦봄에 이르러 여러 겹의 큰 꽃이 피는 찬란한 모란은 양귀비와 흡사하다. 그래서 시인은 모란꽃과 양귀비에 이어 현종까지 개입시켜, 세상의 미인을 얻어 그와 하나가 될 수 있는 군왕의 흡족한 심리 상태를 필치를 통해 유감없이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하고 많은 미인 중에서 성총을 어지럽히고 결국에는 나라를 망친 조비연에 그 미모를 비기며 경국傾國이라는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왕비의 사치스럽고 방탕한 행각에 우려를 표시하고, 군왕과 나라의 장래에 대한 염려를 넌지시 비춘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