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의 송풍(松風)
우리나라에는 옛부터 바람소리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이를 듣는 문화가 있었다.
산과 들에는 수많은 종류의 나무가 있고 이들 나무에 부딛쳐 일어나는 바람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가운데 우리의 선조들은 특히 솔바람소리에 예민하게 감응하며 이를 사랑하였다.
솔잎 사이를 지나는 바람소리는 송뢰(松籟)·송운(松韻)·송도(松濤) 등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솔바람소리는 인간의 정신을 정화시키는 명약으로 생각하였고 또 아름다운 종교적 음률로 받아들였다.
바람 성근 솔밭에 드니 속세가 아득하다 風入疎松無俗聲
거문고 소리 같더니 이내 생황 소리로 들리네 初如鼓瑟轉吹笙
정자 안에 시끄러운 음악은 소용없나니 亭中不必煩絲竹
이것만 들어도 오히려 한 세상 즐길 만하네 聽此猶堪樂一生
바람이 솔숲에 들어오면 솔잎에 의해 온유해지고 청아한 가락으로 변해 간다. 그 소리는 때로는 거문고소리로
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피리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세속을 초월한 자연의 음률이 마음에 닿아 공명(共鳴)하는데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악기의 소리는 차라리 번잡할 따름이다. 솔바람소리는 마음의 번뇌를 씻어 준다.
소나무의 송풍(松風)
뜰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없는 촛불이요 滿庭月色無煙燭
자리에 드리운 그림자는 불청객일세 入坐山光不速賓
솔바람이 타는 거문고 가락 매인 데 없건만 更有松絃彈譜外
그저 소중히 즐길 뿐 전할 길은 없나니 只堪珍重未傳人
이 시는 고려시대의 문신인 최충의 즉흥시라고 한다. 최충은 공명이 지극한 위치에 있었지만 단아하고 고상함이
진세(塵世) 밖에 뛰어나고 시어(詩語)는 맑고 아름다웠다고 한다. 어느날 저녁에 홀연히 바람은 맑고 달은 밝으며
소나무와 대나무들은 저절로 소리를 내니 최충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구(絶句) 한 수를 지었다고 한다.
뜰에는 밝고 부드러운 달빛이 가득하다. 그리고 산 그림자가 다가와 있다. 태고 이래의 자연의 음률인
솔바람소리의 청아한 가락이 솔숲을 스쳐간다. 어찌 그 곡조를 악보에 옮길 수 있으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이 진귀하고도 소중한 즐거움은 다만 스스로 누리는 이만이 즐길 수 있을 뿐, 결코 남에게 전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소나무의 송풍(松風)
찬 바람결이 산에 있는 집을 흔드는데 寒濤憾山齋
소리는 저 하늘 구름 밖에 울려 퍼지네 響在雲霄外
문을 여니 별과 달 휘영청 밝고 開門星月明
솔 위에는 눈이 일산같이 덮여 있네 雪上松如盖
태허(太虛)는 본래 소리가 없거늘 太虛本無聲
신령스런 저 소리는 어디서 나는고 何處生靈籟
고요한 산장에 찬기운이 돌며 지붕이 흔들린다. 소나무 위에는 눈이 가득 얹혀 있고 밝은 달빛만이 애애하다.
저 하늘 구름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소나무 사이를 스쳐 산을 돌아 영원의 하늘로 퍼져 나간다.
태허(하늘)는 원래 정적(靜寂)한 곳이라, 그곳에서 이는 바람소리는 속세의 소리와는 너무도 달라 마치 창공에서
내려오는 신의 발자국 소리처럼 신령스럽고 맑기 그지없다.
시인은 솔숲 사이를 뒤흔들며 지나가는 솔바람소리를 통해서 그 원천인 태허의 정적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
것은 솔바람소리의 파동이 자신의 마음에 공명하면서 시공을 초월한 영적 세계와 맞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나무의 송풍(松風)
눈 쌓인 땅에 바람이 일어 밤기운 차가운데 地白風生夜色寒
빈 골짜기 솔숲 사이로 음악가락 들려오네 空山 籟萬松間
주인은 필시 모산(茅山)의 은사(隱士)로 主人定是茅山隱
문 닫고 홀로 누워 흔연히 들으리라 臥聽欣然獨掩關
눈이 가득히 쌓인 공산에 솔숲 사이를 스쳐가는 솔바람소리를 은사는 홀로 누워 듣고 있다.
작자는 은사가 솔바람소리를 듣는다는 표현에 있어 '문(聞)'자를 쓰지 않고 '청(聽)'자를 쓰고 있다.
'문'은 물리적으로 고막을 진동시키는 소리를 그대로 포착하는 것이고 '청'은 그 소리의 더욱 깊은 곳에 담긴
뜻을 알기 위해 정신을 가다듬고 듣는 것이다.
여기에서 은사는 솔바람소리를 들으면서 아직 남아 있는 진세(塵世)의 번뇌를 씻으려고 몸부림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초월의 시공(時空)에서 스스로의 인생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의 송풍(松風)
오직 솔바람과 맑은 달빛이 있어 惟有松風與杉月
아무리 취해도 돈이 들지 않는구나 取之應不費文錢
송강 정철은 솔바람을 읊은 시를 여러 편 남겼다.
이 시구도 솔바람의 흥취를 만끽하고자 한 시흥(詩興)의 유로(流露)이다.
여기에서 "솔바람과 밝은 달은 값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가져도 돈이 들지 않는다"고 한 것은,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서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명월은 아무리 가져도 금하는 바가
없고(取之無禁) 아무리 사용해도 다하지 않는다(用之不竭)"고 했던 대로 송강의 시에서도 그 뜻을 반영한 것이다.
소나무의 송풍(松風)
본래 산에 사는 사람이라 本是山中人
산중 이야기를 즐겨 듣는다네 愛說山中話
오월의 솔바람을 팔고 싶으나 五月賣松風
사람들 값 모를까 그게 두렵네 人間恐無價
솔바람소리는 아무리 사용해도 다하지 않으므로 결코 값이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위(人爲)가 아닌 자연의 솔바람은 화음이요, 커다란 조화이니 이러한 대자연의 품에 안겨 5월의 솔바람소리를
들으며 선열(禪悅)에 든 한 선승(禪僧)은 "솔바람소리를 내다 팔아야겠는데 세상 사람들이 바람의 진가를 알아줄까?"라고 독백한다.
벼을
양
랴 고산(故山)으로 도라오니
일학(一壑) 송풍이 이내 진구(塵垢) 다 시서다
송풍아 세상 긔별 오거던 부러 도로 보내어라.
솔바람이 속세의 오염을 씻어 주고 앞으로도 오염된 기별은 돌려보내라고 한다. 여기에서 소나무에
선비의 마음을 의탁하고 있다.
청풍이 습습(習習)니 송성(松聲)이 냉냉(冷冷)
다
보(譜) 업고 조(調) 업스니 무현금(無玄琴)이 져러턴가
지금에 도연명(陶淵明) 간 후ㅣ니 지음(知音) 리 업도다
이 시조에서는 소나무에 이는 바람소리는 악보도 없고 곡조도 없지만 줄이 없는 가야금 소리처럼 아름답다는 것이다.
현대문에서 솔바람을 예찬한 글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소나무에는 바람이 있어야 그 소나무의 값을 나타낸다. 허리가 굽은 늙은 솔이 우두커니 서 있을 때에는 마치
그 위엄이 능히 눈서리를 무서워하지 않지마는 서늘한 바람이 '쏴아'하고 지나가면 마디마디 가지가지가 휘늘어져
춤을 추는 것은 마치 칡물 장삼의 소매를 이리 툭 치고 저리 툭 치며 신나게 춤추는 노승과 같아 몸에 넘치는 흥을 느끼게 한다.
- 나도향, 〈벽파상(碧波上)에 일엽주(一葉舟)〉[네이버 지식백과] 소나무의 송풍(松風) (꽃으로 보는 한국문화 3, 2004. 3. 10., (주)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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