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11.18 03:16
리처드 닉슨은 회고록에서 사임 당일 백악관을 떠나는 헬리콥터 안 풍경을 이렇게 썼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없었다.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댄 뒷전으로 '어떻게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라는 아내의 신음이 간간이 들려왔다." 전날 닉슨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사임은 탄핵 직전에 붙잡은 그의 마지막 명예였다.
▶닉슨 정적(政敵)의 사무실에 도청 장치를 들고 침입한 괴한들이 체포됐을 때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삼류 절도 사건"이라는 백악관 대변인의 계산된 무시가 먹혀드는 듯했다. 다섯 달 뒤 이뤄진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반 이상이 사건을 모른다고 했다. 직후 실시된 대선에서 닉슨은 민주당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누르고 재선됐다. 처음부터 도청할 필요도 없었다.
▶뒷조사, 도청, 공작, 돈거래…. 사실 그의 전임자나 경쟁자도 하던 짓들이었다. 한때 닉슨의 라이벌이었던 케네디는 당선을 위해 마피아를 동원하고 아버지의 인맥과 금맥으로 언론과 지배 엘리트를 매수하지 않았나. 하지만 당시 미국인은 정치에 대한 도덕 기준을 바꾸고 있었다. 음모로 얼룩진 베트남 전쟁 때문이다. 닉슨의 외모는 '5시 수염(5 o'clock shadow)'이라던 팔(八)자 주름으로 상징됐다. 거기 나타난 닉슨의 성격은 어두운 '편집증(paranoia)'이었다. '피해망상'이라고도 한다. "왜 나만 가지고…." 닉슨은 시대의 변화를 자신의 굴절된 성격대로 읽었다.
▶'도청 미수 사건'을 방해·회유·은폐·거짓말로 피하려고 했다. 온갖 짓을 다 했다. 자신과 타협하기를 거부한 사건 특별검사를 경질하는 상식 밖의 행동까지 했다. 법무장관·차관이 사임으로 맞섰지만 밀어붙였다. '토요일 밤의 대학살'로 일컫는 장면이다. 주변 사람들이 떠나갔다. 이런 막장 대처가 그를 사임으로 몰고 갔다. 사임조차 자신에 대한 사면 약속과 맞바꾼 거래의 결과였다. 이래서 미국인은 지금껏 그를 '최악의 대통령'으로 꼽는다.
▶미 대통령의 실수를 다룬 책 '대통령의 오판'은 실패의 법칙을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대통령은 자신의 능력과 인기를 과신한다. 둘째, 참모들이 정보를 왜곡한다. '결국 모든 책임이 대통령에게 돌아온다'가 마지막 법칙이다. 닉슨이 백악관을 떠난 건 사건 2년 후였다. 키신저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면 닉슨은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해 외교까지 들쑤셨을 것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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