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비망록의 진실

yellowday 2016. 11. 16. 19:57

입력 : 2016.11.16 03:11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공안 검사 출신이었다. 다소 다혈질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격이라고들 했다. 그는 2015년 1월 사표를 던졌다. '정윤회 게이트'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국회 출석을 거부한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정호성·안봉근 등 권력 핵심은 출석시키지 않고 자신만 국회에 나오라고 한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불만이 있었다고 한다. 사퇴 후 "나는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지 비서실장의 비서가 아니다"고 했다. 지난 8월 말 그의 부음(訃音)이 알려졌다. '조용히 장례 치러 달라'는 유언에 따라 가족은 그가 세상 뜬 지 사흘 후 지인들에 죽음을 알렸다. 최순실 사태가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이다.

▶김 전 수석은 청와대 재임 210일간 있었던 일을 꼬박꼬박 기록했다. 현 정부 국무회의에서 장관들이 수첩을 앞에 놓고 대통령 말씀을 받아 적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이런 분위기는 수석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김 전 수석은 상관인 비서실장 발언 내용을 꼼꼼히 적어놓았다. TV조선이 그의 비망록을 입수해 연일 보도했다. 

▶김 실장은 정부를 비판한 언론을 두고 "그대로 두면 안 된다. 언론중재위, 고소·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 불이익이 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정부에 호의적인 매체에 대해서는 '각종 금전적 지원'으로 기록돼 있다. 정윤회 사건을 처음 보도한 신문사를 세무조사하라 했고, TV에 출연해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한 정치평론가는 '출연 금지'하라고 적혀 있다. 김 실장 언론 관련 지시 사항은 대부분 비망록 내용대로 이뤄졌다.

▶김 실장은 유신헌법에 대해 '국력 결집과 남북 대결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지시했다. 2014년 중반에는 '사이비 예술가가 발붙이지 못하도록 할 것' '문화예술계 좌파 책동에 투쟁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즈음 현 정부가 이념 성향에 따라 예술인을 분류하고 지원 불가 리스트를 내려 보냈다는 의혹이 있다.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검찰 수사 착수 다음 날엔 '휴대폰, 이메일, 통신 내역 범위 기간' '압수수색' '청와대 3 비서관 소환 등 협의'라는 문구가 나온다.

▶6·25전쟁 관련 비망록을 남긴 미국 딘 애치슨 국무장관은 "비망록은 상대에게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쓰인다"고 했다. 김 전 수석의 비망록은 단순히 망각에 대비한 것일 수 있다. 어쨌든 박근혜 정부 권력 심층부의 내밀한 풍경을 증언하는 귀중한 기록인 것은 분명하다. '수첩 시대'의 성과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2015년 1월 9일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입을 굳게 다물고 의원들 질문을 듣고 있다. 그는 이날 김영한 민정수석이 국회 출석 지시를 거부하고 사퇴한 것에 대해 “그런 (김 수석의) 태도를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왼쪽 사진은 1월 6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한 김영한 민정수석. /뉴시스·전기병 기자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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