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日報 萬物相

'최순실 패러디' 봇물

yellowday 2016. 11. 4. 18:54

입력 : 2016.11.04 03:15

1980년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 트롬본 주자를 뽑았다. 아비 코난트라는 여성이다. 군악대에서 주로 연주하던 트롬본은 남자 악기라는 편견이 강했다. 심사에 공정을 기하기 위해 장막 쳐놓고 실력 하나만으로 뽑기로 했다. 그랬더니 여성이 된 것이다. '정의론' 쓴 철학자 존 롤스는 공정성을 실현하려면 누구든 배경에 대해서 깜깜한 '무지의 베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6년 대한민국은 정반대다. 며칠 전 한 고등학교에 대자보가 붙었다. '누나, 이화여대 합격 축하해. 우리도 명문대 가고 싶은데 부모님이 평범하셔서 비싼 말은 못 사주신대.' 수능을 코앞에 둔 수험생들의 조롱이다. 보통 학생은 학교 사흘 결석만으로 입시에서 감점받는데 누구는 대통령과 통하는 비선 실세의 딸이라는 이유로 고3 때 131일 결석하고도 승마 특기생으로 합격했다. 공부법 지도하는 인기 강사 강성태는 "답 없다. 공부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만물상] '최순실 패러디' 봇물

▶시중엔 '문화 융성'은 자취도 없고 '최순실 풍자 문화'만 만발하다. "대통령이 자꾸 물어봐 귀찮다"고 했다는 최씨의 오만한 언행을 빗대 '순실이에게 물어봐'란 개그가 유행이다. 영화 '아가씨'를 패러디해 주인공 아가씨와 하녀가 뒤바뀐 포스터도 SNS로 확산된다. '순실이 닭 키우기' 모바일 앱에선 최씨가 국정 농락하듯 '연설문 수정' '구국의 결단' 코너를 누를 때마다 대통령 지지도가 뚝뚝 떨어진다. 최씨 캐릭터가 말 타고 가며 장애물 피하는 '순실이 빨리 와' 게임도 이틀 만에 5000건 이상 다운로드됐다.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3급까지 승진하는 데 평균 33년 걸린다. 행정고시 패스해 5급 사무관으로 출발해도 3급까지는 최소 20년이다. 최순실의 측근들이 30대 나이에 벼락출세해 2·3급으로 청와대에서 일한다는 게 알려지니 공무원들과 노량진 학원가 공시생들도 부글부글 끓는다.

▶1974년 불광동 단칸방에 살다가 이름 일곱 번 바꾸고, 직업도 정체도 불분명했던 아버지를 둔 최씨 일가 재산이 3000억원도 넘는다는 보도가 나왔다. 돈 모은 과정도 불투명한 데다 40년 인연을 내세워 더 챙기려고 그들이 저지른 하나하나가 국민 염장을 지른다. 대한민국에서 공정 경쟁은 복면 쓰고 노래 실력 겨루는 TV 오락 프로그램 속에만 있는 모양이다. 반칙이 횡행하는 막장 드라마가 현실이 됐고 묵묵히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뒤통수 맞은 격이니 어찌 맥빠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꼬집고 풍자라도 해야 맺힌 분노가 조금이라도 풀리는 게 국민 마음일 것이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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