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줄어들고 늘어나고…

yellowday 2016. 4. 7. 17:35

입력 : 2016.04.07 09:57

“네 키는 여기부터 바닥까지가 아냐. 여기에서 저 하늘까지야. 그럼 네가 이 동네에서 가장 큰 소년이 되잖니.” 영화 ‘리틀 보이’에서 페퍼는 동네에서 가장 키가 작아 놀림감이 되곤 한다. 그에게 친구인 하시모토 아저씨는 네 턱부터 하늘까지가 키라고 말해준다. 키도 작고 하인에 불과했던 마사오 쿠메가 몽골의 무시무시한 장수 부카를 마침내 처치하고, 대단한 사무라이가 됐다는 얘기를 해주면서. 아저씨는 아마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키 재기 방식을 빌려 쓰지 않았나 싶다.

높은 산을 전쟁터로 누비고 다니던 나폴레옹은 어느 날 키 큰 적군 병사와 맞닥뜨리게 된다. “너처럼 키 작은 사람이 나를 이길 수 있겠냐?” 병사가 조롱하자 그는 받아친다. “키라고 하는 건 하늘에서부터 재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더 크다. 내 의지가 더 강하다. 그래서 나는 너를 이길 수 있다!” 키가 4cm나 줄어들었다며 우울해하는 친구에게 바로 이 얘기를 해줬다. 친구만이 아니라 나 또한 격려로 되새기고자 해서였다. 재보지 않아서 몇 cm가 내려갔는지 모르고 있을 뿐이지, 나이 들어가며 키가 줄어들고 있을 게 분명하니 말이다.

그러잖아도 반짇고리에 손길이 자주 가게 되는 요즘이다. 봄 바지의 단을 줄이는 일이 잦아져서다. “바지 길이가 발목 아래로 내려오면 구닥다리같이 보여서.” 키 때문에 줄이고 있는 거라 말하기가 왠지 싫어서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바느질 이유를 먼저 댄다. 학창시절, 반에서 키순으로 10번을 넘은 적이 없는 작은 키가 더 줄면 어쩌자는 건지…. 어디 키뿐 인가. 머리숱이 줄고, 기억력부터 시력, 청력, 악력까지 ‘력’자 들어가는 것 모두에 잠도 준다. 신체적인 것만이 아니다. 전화가 줄고, 만남이 줄고, 그나마 능력을 발휘할 일이 줄고….


일장일단

사진=조선일보DB

줄어드는 것 못잖게 늘어나는 것도 있으니 위안이 된다고나 할까. 우선 시간이 늘어난다. 돌아보면 직장과 살림과 육아와 공부에 허덕이며 동동거리던 때가 꿈만 같다. ‘그럴 수도 있으려니’하는 너그러움도 늘어난다. 시간이 늘고, 외로움이 늘고, 기다림과 그리움이 늘면서 어쩔 수 없이 늘어나는 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럴 수도 있으려니’만큼 몸과 마음의 건강에 두루 좋은 늘어남도 없는 것 같다. 반면 서운함도, 아집도 늘어난다. 그러고 보면 줄고 느는 모든 것에 일장일단이 있어 보인다.

내 바깥에서 일어나는 늘고 줆도 마찬가지다. 요즘 많이 듣게 되는 빅데이터가 우선 그렇다. 인터넷의 발달로 수많은 사람의 동영상과 음성, 사진, 위치 등 정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정보 집합에서 가치를 추출하고 분석해 질병이나 사회현상의 변화에 대한 의미 있는 결과를 끌어낸다. 이런 빅데이터로써 인간의 행동을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세상이 열린다는 주장이 나오는 마당이다. 반면 개인정보와 프라이버시를 지킬 여지는 줄어든다. 익명으로 수집돼도 몇 가지 정보만 조합하면 누구인지 식별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 뭐가 줄어들고 뭐가 늘어날지 변화와 흐름도 일찌감치 짚어졌다. 빅데이터 전문가의 예측으로는 ‘근육’이 아닌 ‘두뇌’를 쓰는 일들이 늘어남에 따라 직장에서 여성 비율이 늘어난다. 가사도 남녀가 공평하게 나누게 되면서 남자가 부엌에 들어갈 일이 늘어나고, 따라서 남성을 위한 요리 관련 산업과 가사를 돕는 서비스업이 늘어나리라고 한다. 혼자 사는 삶이 늘어나니 전통적인 가치관이 변화하면서 결혼이나 출산율은 줄어든다고 한다. 게다가 수명이 늘어나면서 생명보험회사의 종신보험판매는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낙담 또는 낙관

인공지능과 로봇의 활용도 늘어나면서 삶의 여유가 줄고 팍팍해지리란 전망이다. 최근 바둑의 고수 이세돌 9단과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이 큰 관심이 쏠렸다. 얼마 전엔 평생 골프를 쳐도 어려운 홀인원을 인공지능 프로그램 로봇이 샷 5번 만에 해치웠다. 로봇이 자산관리를 하는 ‘로보어드바이저’가 펀드 매니저 보다 나은 수익률을 기록했는가 하면, 군사 분야와 심지어 신문기사 작성까지 해내고 있다. 그 영역이 점차 늘어나면 우리의 경계감도 늘게 된다. 먹고 살 길이 줄어드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부터 늘어난다.

‘4차 산업혁명’이 남자의 일자리 3개를 사라지게 하고, 1개를 생기게 한다는 보고서는 진작 나왔다. 여자의 경우엔 과학기술 분야에 덜 진출한 까닭에 5개가 사라지고, 1개만 생기는 비율로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증기기관 발명을 통한 기계화가 1차 산업혁명이라면, 전기를 활용한 대량생산이 2차, 정보화와 전산화가 3차,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전으로 대표되는 기술융합과 변화가 4차 혁명이라고 한다. 3차 혁명 때도 일자리 감소는 우려됐지만, 정보 관련 분야에선 오히려 늘어났다니, 이제 시작된 4차에서도 살 길은 생기지 않을까.

나이에 따라, 시대에 따라 늘고 주는 건 필연적인 변화다. 그 흐름 속에서 낙담이냐, 낙관이냐는 결국 내 생각에 달렸다. 연초 세계경제포럼에서도 4차 혁명이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왔지만, 빌 게이츠는 “기술혁신은 우리 편이다. 기본적으로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고 낙관했다. 모든 게 빠르게 늘고 주는 이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키조차 나폴레옹과 하시모토 아저씨처럼 하늘로 발상을 전환하면 줄어도 느는 기분이 된다. 할 수 있는 일쯤이야 얼마든지 해낼 힘이 덩달아 늘어날 것만 같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