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6.02.12 09:26
파워 남성학
밸런타인데이와 ‘연인의
날’
영국 런던의 국립우편박물관에는
짝사랑하는 남자를 그리워하며 쓴 처녀들의 연애편지가 전시되어 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이 부르스라는 시골 처녀가 존 패스턴이란 청년에게
1477년에 보낸 편지이다.
가난한 시골 처녀의 순수한 열정에 감동한 도시 청년이 구애를 받아들여 2월 14일 결혼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축제를 벌였는데, 이것이 현대적인 밸런타인데이의 부활이다.
밸런타인데이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고대 로마의 사제(司祭) 밸런타인이 연애결혼을 엄격히 금지했던 270년
2월 14일, 사랑하는 남녀를 도와주다가 이교도의 박해로 인해 순직한
것을 기리면서 시작됐다고 전해온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도 매월 14일에
특별한 의미를 붙여 선물을 주고받는데, 우리나라 전통의 ‘연인의 날’은 매우 낭만적이었다.
벌레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경칩(驚蟄)이 바로
연인의 날이었다. 경칩은 음력 2월로 온 세상에 봄기운이 완연한 시기이다.
밸런타인데이의 원조인 고대 로마의 ‘루페르카리아’ 축제가 2월
보름이고, 히말라야 고산족의 연인 축제인 활쏘기대회도
2월 보름이던 것을 보면 무릇 생동하는 봄은 동서고금 모두에게 사랑이 움트는 계절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술(商術)이 녹아든 초콜릿
선물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은 낭만적이고 은유적인 사랑 고백으로 서로를 그리워했다.
은행 알을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은행나무의 수나무와
암나무는 서로 바라만 보아도 결실을 맺는다는 사랑수(樹)이다.
연인의 날보다 오래된 전통적인
구애풍속은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행해진 ‘탑돌이’다. 보름달이 뜨면 처녀 총각들이 밤새워
탑을 돌다가 세 번 눈이 맞으면 숲으로 들어가
관계를 맺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지금의 파고다공원에 위치한 원각사의
탑돌이가 너무 문란하다 하여 조정에 상소가 빗발칠 정도였다. 견우직녀가
만나는 칠월칠석도 구애(求愛)의 날이다.
이날 총각이 사모하는 처녀의 집 담을 넘어가는 풍속이 있었기에 머슴들이 몽둥이를 들고 월담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
처녀들도 자신의 외모와 솜씨를 뽐내
총각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줌치(주머니의 옛말)를 만들었는데,
‘밀양이라 영남 숲에 뿌리 없는 나무
있어 /
그 나무 열매가 열어 무슨 열매
열렸는가 /
별과 달이 열렸다네 /
별은 따서 안에 넣고 /
달은 따서 줌치로 집어 /
뒷동산 굽은 나무 가지가지 달아놓고…
이 줌치라 지은 솜씨 누 딸애기가
지었던고 /
아전의 딸 봉숭애기 열이레 새벽달에
/
마루 끝에 걸터앉아서 아리살픈
지었다오’
라는 민요가 전해온다. 민요에서 보듯
우리네 처자들은 살림솜씨의 으뜸인 바느질 실력으로 자신의 매력을 널리 알렸
으니, 초콜릿과 사탕에 어디 견줄 수 있으랴.
그런 점에서 순수해야 할 연애 풍속도조차 상술에 물드는 세태가 안타깝다.
미투리에 앵두꽃을 넣어
구애
사랑하는 여인의 창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서양의 구애법과 달리 우리 선조들은 꽃을 소재로 했다. 우리네 풍속은 미투리에
앵두꽃 가지를 넣어서 처녀의 집에 던져 구애하는 것이었다.
발이 들어가는 미투리에 처녀를 뜻하는 앵두꽃을 넣은 것은
성행위를 상징한다.
때로 미투리에 복숭아꽃을 꽂아서 던지는 난봉꾼도 있었는데 그것은
청혼(請婚)의 의미가 아니라 요즘으로 치자면 하룻밤 사랑을
즐기자는 유혹의 표시였다. 이런 연유로 상사병(相思病)에 걸린 총각에게는 사모하는
규수의 버선을 태운 재가 유일한 약이었다.
발을 감싸는 버선을 신는 행위도 성행위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꽃은 처녀성을 상징하므로 꽃을 꺾는
것은 ‘그대의 처녀성을 갖고 싶다’는 의지이고, 발을 감싸는 버선이나 신발은 여성의 심벌,
또는 섹스를 은유하는 것이었다. 겉으로는 대단히
낭만적인 사랑 고백이지만 속뜻은 상당히 노골적이었다.
‘꽃’은 사랑 고백의 대표적 상징물이라
구애한다는 말보다 투화(投花)한다는 표현을 썼는데,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던
고려 충선왕은 귀국 길에 사랑하는 여인에게 연꽃 한 송이를 꺾어주며
변심하지 말기를 기약했다. 하지만 국경을 넘기도 전에 도착한
여인의 편지에는 ‘떠나시던 그날에 꺾어주신 연꽃 송이가 처음에는 빨갛더니, 얼마
가지 않아 시들어 떨어지는 것이 사람의 마음과
같아라’라며 변심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구애의 상징은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다.
영화를 보면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둥그런 원을 그리고, 가운데 타오르는 불을 향해 발을
구르며 창을 찌르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여성의
음부인 원과 불에 남성의 성기인 창을 찌르는 것으로 성행위를 하자는 구애를
뜻한다. 남미 페루의 원주민들도 6일간 밤낮으로 처녀 총각들이 이와
같은 제례를 벌이고 있다. 한편, 고대 이집트의 여성들은
거대한 남근상을 메고 돌아다니며 부닥치는 남자와 몸을 섞었다고 하는데, 가장 화끈하고
음란한 구애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밖에 네팔의 선남선녀들은 구애의 날이
되면 편을 갈라 동서쪽 나무에 숨는다. 그리고 남성의 무리 속에 있는 한 총각이 노래를
부르고, 그 노래에 화답한 처녀가 짝이 된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에서는 노래 대신 공을 호감 있는 처녀에게 던져 받아주면
짝이 되는 구애 놀이를 한다.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구애 풍속
불교미술에서 활짝 핀 연꽃은 우주를
나타내며, 줄기는 그 축을 상징한다. 불교에서 화엄(華嚴)이란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한다’는
말로, 한번 피었다 지는 꽃이 아니라 영원히 지지
않는 공덕의 꽃을 의미한다. 이처럼 꽃은 종교적 신비의 상징물로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붉은 카네이션이나 붉은 장미는 동정녀의 순결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랑하는 연인에게 꽃을
선물하는 구애 풍속이 생겨났는데, 칠순의 나이에 십대 소녀와 결혼하여 자식을 둔
찰리 채플린은 꽃으로 여심(女心)을 사로잡은 대표적 인물이다.
채플린은 일생 동안 수많은 여배우와 염문을 뿌렸는데,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꽃다발을 보내 마음을 뺏었다고
한다.
동서양에서는 꽃이 여성의 몸을
상징한다고 여겼는데, 솔로몬은 아가(雅歌)에서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구나.
여자들 중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
같구나’라고 노래했다. 대표적 성병인 매독(Syphilis)을 서양에서는 ‘장미의 가시’라고
불렀으며, 동양에서는 ‘매화의 독(梅毒)’으로
표현한다. 아무튼 꽃은 가장 일반적인 구애 도구로 사용되고 있는데,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장미와 수선화, 불교문화권에서는 국화와 백합을
선호했다.
애절한 구애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남녀가 처음 만나 맺는 스킨십은 손잡기이다. 따라서 손을 맞잡거나 팔짱을 낀 연인들의
모습은 음양이 하나가 되는 첫 단계이다. 즉, 손목을 잡는
것은 곧 구애의 허락이고, 발전하여 곁(육체관계)을 달라는 의지를
담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요에는 손목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그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고려시대의 노래 ‘쌍화점’으로
‘쌍화점에 쌍화사러 가고신댄 /
하회아비 내 손목을 쥐여이다’라는 묘사로 시작하여, 결국 ‘손목’으로
갈무리된다.
손잡기부터 성관계가 시작됨을 알 수
있는데, 돈에 팔려 웃음과 몸을 내주어야 했던 여사당들은 ‘여사당 자탄가’를 통해
‘이 내 손은 문고린가 이놈도 잡고 저놈도 잡네’라며 신세
한탄을 했다.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날로 상술에 물드는
구애풍속이 좀더 멋스럽고 아름다운 옛 모습을 되찾고, 건강하고 활달한
사랑의 설렘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
김재영(강남퍼스트비뇨기과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