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麗的 詩 ·人

이해인의 '설날 아침'외

yellowday 2016. 2. 9. 22:03



설날 아침

햇빛 한 접시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 더 먹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아빠도 엄마도
하늘에 가고
안 계신 이 세상
우리 집은 어디일까요

일 년 내내
꼬까옷 입고 살 줄 알았던
어린 시절 그 집으로
다시 가고 싶네요

식구들 모두
패랭이꽃처럼 환히 웃던

그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싶네요
(이해인·수녀 시인, 1945-)


+ 떡국 한 그릇
 
정월 한낮의 햇살이
떡국 한 그릇이다
며칠째 굶은 숲이, 계곡이
어른에게 세배 드리고
덕담 몇 마디 들었는지
배가 부르고 눈이 감겼다 

한 술 잘 얻어 먹었다고
새파란 풀 돋아나고
물 흘러가는 소리가 상쾌하다 

 
오늘이 흥겨운 설날이라
한 솥 끓인 떡국
이 산하에 골고루 나눠주는데
한 살 더 먹었다고
까불거리는 시누대가 정겹다
까치가 고개를 바짝 치켜든다 

 
따스한 언덕에 기댄
소나무는 벌써 졸고 있고
한 그릇 더 먹은 바위는
불룩한 배 드러낸 채
매고 가도 모르게 잠들었다 

 
계곡에는 오랜만에 만난
며느리 같은 물들이
떡국 한 그릇 먹는다고
부엌처럼 시끄럽다
솥 다 비운 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며칠 내로 꽃소식 듣겠다 
(김종제·교사 시인, 1960-)


+ 떡국 한 그릇   

섣달 그믐
어머니의 한숨처럼 눈발은 그치지 않고
대목장이 섰다는 면소재지로 어머니는
돈 몇 푼 쥐어 들고 집을 나서셨다
사고 싶은 것이야
많았겠지요, 가슴 아팠겠지요 

 
섣달 그믐 대목장날
푸줏간도 큰 상점도 먼발치로 구경하고
사과며 동태 둬 마리 대목장을 봐오시네
집에 다들 있는 것인디 돈 들일 것 있느냐고
못난 아들 눈치보며
두부전, 명태전을 부치신다 

 
큰형이 내려오면 맛보이신다고
땅 속에 묻어 뒀던 감을 내어 오시고
밤도 내어 오신다. 배도 내어 오신다
형님의 방에는 뜨근뜨근 불이 지펴지고
이불 호청도 빨아서
곱게 풀을 멕이셨다 

 
이번 설에는 내려 오것제
토방 앞 처마끝에 불을 걸어 밝히시고
오는 잠 쫓으시며 떡대를 곱게 써신다
늬 형은 떡국을 참 잘 먹었어야
지나는 바람소리
개 짖는 소리에 가는 귀 세우시며
게 누구여, 아범이냐
못난 것 같으니라고
에미가 언제 돈보따리 싸들고 오길 바랬었나 

 
일년에 몇 번 있는 것도 아니고
설날에 다들 모여
떡국이나 한 그릇 하자고 했더니
새끼들허고 떡국이나 해먹고 있는지
밥상 한편에 식어가는 떡국 한 그릇
어머니는 설날 아침
떡국을 뜨다 목이 메이신다 
 
목이 메이신다
(박남준·시인)


+ 설날 떡국

설날 아침 맛있는
떡국 한 그릇을 먹으며

덩달아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나무로 치자면 나이테
한 줄이 더 그어지는 셈이다.

그래, 올해부터는
한 그루 나무처럼 살자

하루하루 전혀
조급함 없이 살면서도

철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와 같이

나이가 들어간다고
겁먹거나 허둥대지 말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좋은 사람 쪽으로 변화하면서

내가 먹은 나이에 어울리는
모양으로 살도록 하자.
(정연복·시인,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