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를 타고 낚시하는 그림. /정지천
한 척의 조각배를 넓은 바다에 띄워 두고서
인간세상을 다 잊었으니 세월 가는 줄 알겠는가?
여기서 '어부'는 자연 속에서 흥취를 즐기며 유유자적하는 늙은 가짜 어부, 바로 그 자신을 말하는 것이죠.
[제2수] 굽어보니 천 길 푸른 물, 돌아보니 겹겹 푸른 산
열 길 붉은 먼지 세상에 얼마나 가렸는고
강호에 달 밝아 오니 더욱 한가롭구나.
이것을 보면 아직 속세의 일을 완전히 잊지 못한 것 같습니다. 세상일에 대해 미련이 남아 있으니
[제3수] 푸른 연잎에 밥을 싸고 버들가지에 물고기 꿰어
갈대와 억새가 우거진 곳에 배 대어 묶어 두니
이처럼 맑은 뜻을 어느 분이 아시겠는가?
[제4수] 산등성이에 구름이 한가롭게 피어나고 물 가운데에 갈매기가 나는구나.
아무런 욕심 없이 다정한 것이 이 두 가지뿐이로세.
평생에 시름 잊고 너를 좇아 놀리라.
[제5수] 한양을 돌아보니 북쪽의 궁궐이 천리로다.
고깃배에 누워있은들 잊은 적이 있으랴.
두어라, 내가 걱정할 일 아니라. 세상 구할 현인이 없으랴.
- 작은 배를 타고 있는 어부. /정지천
어부가의 가사는 신선의 경지
어부가의 발문(跋文)을 퇴계가 썼는데, 거기에 신선이란 말이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우리 농암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분수가로
염퇴했다. 항상 조각배를 타고 물안개 낀 강 위에서 읊조리거나 낚시바위 위를 배회하며 물새와 고기를 벗하여 망기지락(忘機知樂)
했으니. 강호지락(江湖之樂)의 진(眞)을 터득한 것이다. 그 아름다움이 신선과 같았으니 아, 선생은 이미 진락(眞樂)을 얻었도다!’
농암은 벼슬자리에서 은퇴한 뒤에 글을 많이 썼는데, 38세 이후에 남긴 120여 편의 글 중에서 90여 편이 은퇴 후에 쓴
글이라고 합니다. 자연 속에서 해방감을 느끼며 자유롭게 지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농암은 양반, 상민을 가리지
않았고 빈부를 차별하지 않았으며, 시골의 노인들과 잘 어울렸으며 그들의 삶을 마음깊이 존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농암에게선 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 신선의 풍모가 느껴진다는 것이죠.
농암 집안에도 내려온 노래와 춤
농암의 집안에도 노래와 춤이 상시로 있었다고 합니다. 노래에는 춤이 따랐고 춤엔 술이 따랐습니다. 선비라서
도학군자인양 하며 근엄하게 지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풍류를 즐길 줄 알았기에 벗들과 만나 흥겹게 지냈던 것이죠.
손님이 오면 강에 배를 띄우고 노래했고, 철쭉꽃이 피면 벗들이 모여 시를 짓고 강물 위에 잔을 띄워 유상곡수(流觴曲水)를
했다고 합니다.
유상곡수는 강 위쪽에 앉은 이가 흘러가는 물에 술잔을 띄우면 아래쪽에 낮은 사람이 받아서 마시는 놀이입니다.
농암과 퇴계도 자주 유상곡수를 하며 놀았다고 하지요.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지내는 것도 장수비결에 들어갑니다.
퇴계가 농암의 삶을 보고 ‘진락(眞樂)’을 얻었다고 한 것도 일상적인 노래와 춤, 여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어머니 권씨 부인은 농암이 승지 벼슬로 승진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한글로 시를 지어 계집종으로 하여금
노래를 부르게 하였습니다.
그 노래가 바로 선반가(宣飯歌)입니다. 이 쯤 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는 분위기가 확실하지 않나요?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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