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태숙 연출 위안부 연극 '하나코' 연습 현장 가보니]
예수정·전국향 열연 돋보여
현재와 1945년 넘나들며 韓日의 복합적 시선 그려내
- 연극‘하나코’의 연습 현장에서 주연 한분이 역의 예수정(위)이 과거를 회상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장련성 객원기자
지난 4일 대학로의 한 연습실에서 펼쳐진 연극 '하나코'(김민정 작, 한태숙 연출)의 연습 현장. "위안부 문제는 자칫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운 주제라 오히려 절제하려고 애썼습니다. 현재의 우리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 해요." 마스크를 쓴 채 구석 의자에 앉아 있던 연출가 한태숙(65)이 말했다.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그는 좀처럼 연습 광경을 공개하지 않기로 유명한 완벽주의자다. "언젠가는 꼭 연출해 보고 싶었던 소재입니다. 대본을 받아보곤 숨도 쉬지 않고 '하겠다'고 말했지요."
극단 물리의 '하나코'는 위안부 피해자인 한분이 할머니가 태평양전쟁 때 헤어진 동생을 찾으러 캄보디아를 찾는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여성의 비극을 다루는 연극이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다른 연극과 달리, 일제의 만행 고발에 그치지 않고 현재의 한국인과 일본인이 이 문제를 보는 복합적인 시선을 그려낸다.
조선에서 끌려간 위안부였다고 주장하는 캄보디아의 렌 할머니에 대해 일부 등장인물은 '지원금을 노리고 사기를 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숨기지 않는다. 한분이와 함께 캄보디아로 간 방송국 PD와 여성학자는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논문 주제라 이 테마에 끌리는 거겠지" "시청률이나 올려보려고 진실을 과장하고 호도하고 있다"며 서로를 비난한다. 작가 김민정은 "우리 세대가 품고 있는 이기심 같은 것들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위안부들은 이 험난한 전장에서 천황 폐하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 일(위안부)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과거와 현재 일본인의 대사는 또 다른 폭력처럼 다가온다.
연극은 같은 무대 공간에서 시간의 경계를 설정하지 않고. 현재와 1945년의 상황을 수시로 넘나든다. 이미 지나간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문제임을 드러내는 극적 장치다. 세월에 지친 슬픔과 한(恨)이 표정에 화석처럼 쌓여 있다가 절정의 대목에서 아프게 폭발하는 주연 예수정을 비롯해 전국향, 우미화(여성학자 역), 신안진(PD 역), 신현종(일본인 역) 같은 연기파 배우들이 연기 스타일에 꼭 맞는 역할을 맡았다.
▷연극 '하나코'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10일까지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02)589-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