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빗속의 옥포 여인들... "남편이 회사서 부르면 가슴이 철렁한다고..."

yellowday 2015. 11. 25. 09:04

입력 : 2015.11.25 06:37 | 수정 : 2015.11.25 08:22 11월 23일

 

거제 옥포동엔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될 정도도 빗발이 굵어졌다.
“남편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계속 한숨만 쉬어요. 예전에는 잘리면 삼성이나 현대 가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더 일할 곳도 없다고.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고...”
오전 10시쯤 옥포동에서 만난 이모(33)씨는 “아직 월급이 안 나온 것은 없는데, 아무래도 씀씀이부터 줄이고 있다”고 했다. “냉동고 뒤져 생선부터 털고...아이들이 3살, 5살인데 내년 지원이 끊기면 집에 데리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한 달에 60만원을 낼 방법도 없고…”

오전 11시쯤 옥포 아동 병원을 찾았다. 아이와 엄마 서너 명만 있었다. 한산했다.
두 살 딸아이를 안고 있는 박모(29)씨와 잠깐 얘기했다. 까만 털모자, 체크무늬 니트를 입은 젊은 엄마였다. 남편은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이라고 했다.
“요즘 남편이 ‘일거리가 있을 때 열심히 벌어야 한다. 미리 벌어 놔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인원 감축은 말로만 그렇다고 하는데…정말 그런 건지, 안심 시키려고 하는 말인지 도통 속을 알 수는 없고...”
“외식 안하고, 쇼핑 안하고, 좋아하는 영화도 안 보고 옷도 안 사요. 이번 달 말에 같은 회사 부인 몇 명이 보라카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가 취소했어요."
오후 1시. 한 커피 전문점. 매장 테이블 절반이 비어 있었다.

옥포동의 한 커피전문점.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변지희 기자
옥포동의 한 커피전문점. 점심시간인데도 한산한 모습이다./변지희 기자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인 김모(44)씨는 “원래 점심 때면 사람이 너무 많아 앞에 앉은 사람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는데, 다들 커피 값도 아끼는 모양”이라고 했다.
“지난 달은 월급 한 주 전까지 월급이 안 나올 거라고 했어요. 대우조선해양 직원 부인들끼리 모이면 월급 얘기만 했어요. 급한 마음에 초등학교 5학년인 아이 학원부터 끊었어요. 하지만 중학교 2학년인 첫째는 한창 학원을 다닐 때라 끊을 수가 없었어요.”
김씨는 “거제 사람들이 그동안 풍족하게 살았다. 원래 쓰던 씀씀이가 있어 한 번에 생활비를 줄이기는 어려운데, 별 수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모(33)씨는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직원이라고 했다.
“아직 회사 어려움이 피부에 와 닿지는 않아요. 직원 3000명 줄인다고 하는데 어차피 다 퇴직할 사람들이라는 얘기도 있고...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오후 2시쯤 대형마트에 갔다. 한산했다.

옥포동의 한 대형마트./변지희 기자
옥포동의 한 대형마트./변지희 기자

이모(31)씨는 아이와 어묵을 나눠 먹고 있었다. “큰 아이는 두 살, 둘째를 임신 중”이라고 했다. 큰 아이를 태운 자동차 모양의 쇼핑 카트 안에는 요거트 8개 짜리 묶음 하나만 있었다.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이라고 했다.
“식비는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였고, 아이 장난감을 못 사요. 아이들이 빨리 커서 옷을 3개월 마다 사야 하는데 중고로 삽니다. 아이에겐 좋은 것 만 해주고 싶은데, 미안한 마음이에요.”
손모(36)씨는 “가족이 5명이라 일주일에 4번은 장을 보러 왔는데, 마트에 오면 돈을 쓰게 돼서 2번만 온다"고 했다. 마트에서 만난 여인들은 “마트에 오기 무섭다. 웬만하면 오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대형마트 안의 장난감 매장. 손님 없이 텅 비어있다. /변지희 기자
대형마트 안의 장난감 매장. 손님 없이 텅 비어있다. /변지희 기자

오후 4시쯤. 옥포의 한 카페를 찾았다. 30평 가량의 넓은 실내에 손님은 두 명이었다.

카페 주인은 “불안한 정도가 아니라 싸늘하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대우조선 사태는 직격탄”이라고 했다.
“회사에서 누가 부르면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고 합니다.” 옆 자리에 있던 한 여인이 말했다. 그의 남편도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이다.
그는 “홈쇼핑 채널을 아예 끄고 산다. 누가 뭐라 안 해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난방비 2~3만원도 아끼게 된다”고 했다.
옥포의 여인들도 대우조선해양의 5조원 부실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들의 입에선 “주인 없는 회사”란 말이 자주 튀어 나왔다. “흥청망청 대더니 터질게 터졌다”고 하는 여인도, “성과급 안 줄려고 일부러 회사 힘들다는 말 만들어 퍼뜨리는 것 아니냐”는 여인도 있었다.

육아 휴직중인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 김모(31)씨는 “회사가 수주 실적에만 집착하고 있다. 아반떼만 만들던 회사가 갑자기 트럭을 만들겠다고 달려 들었으니 제대로 될 리가 있나"고 했다.
김씨는 “외국인들이 많이 사는 곳을 샌프란시스코 스트리트라고 했는데, 지금은 외국인이 많이 빠졌다고 들었다. 항상 ‘돈이 없다, 없다’ 해서 이번에도 그냥 하는 말 인 줄 알았는데, 심각하기는 한가 보다"고 했다.
“우리가 잘 살려면 회사가 살아야 합니다. 내 남편이 잘릴지도 모르지만, 한번 쯤은 칼바람이 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텅 빈 옥포동 거리/변지희 기자
텅 빈 옥포동 거리/변지희 기자


남편이 대우조선해양 직영 직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했다는 김모(44)씨는 “젊을 땐 신문 배달도, 도배 현장 노가다도 했는데, 요즘이 IMF 때 보다 더 힘들다”고 말했다.
“직원 관리가 그동안 너무 엉망이었어요. 3%의 직원이 관리하고 97%의 직원이 따라오는 구조인데, 상위 3%중 맨 위 0.1% 때문에 모두 타격 입었어요. 너도 나도 해 먹을 거 다 해 먹는 동안 누구 하나 제지도 못했어요. 이제부터라도 나머지 2.9%가 정말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씨는 “주인 없는 회사라고 다들 책임감이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도장 찍는 사람들, 20년 넘는 연차들은 현장에 잘 안 나가고 연차 낮은 대리, 과장급만 내보낸다. 그러니 감독관들이 우습게 본다”고 했다.
기자가 만난 옥포 여인들은 모두 불안해 했다. ‘3000명 감원’ 소식에 대해서는 “아마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도, “걱정된다. 잠이 안 온다”고 했다.
옥포에서 만난 여인들, 그들은 누군가의 아내이고, 어머니이고, 며느리다. 그들이 지금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외식 안하고, 옷 안 사고, 마트 줄이고, 병원비 줄이고, 보험 해약하고, 아이들 학원 끊고, 한 푼이라고 아끼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남편의 야근과 휴일 근무는 부쩍 늘었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피곤에 지쳐 잠에 골아 떨어지는 남편을 보는 그들의 마음도 덩달아 무겁다고 했다.
“내달 월급은 나올까? 상여금 안 나오면 어떻게 하지?” 옥포의 여인들은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10시 30분쯤 인터뷰가 끝났다. 거리의 불은 꺼지고, 길거리에는 인적이 끊겼다. ‘옥태원’ 거리에는 취객 두 세 명이 비틀거릴 뿐이었다. 휘황한 불빛을 내는 외국인 전용 펍 두 곳만 외국인들로 시끌벅적했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