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亭子

"무슨 꿈 꾸셨기에 대통령 되셨나요" 초등생이 묻자 "난 숙면 취해 꿈 안꾼데이"

yellowday 2015. 11. 24. 07:09

입력 : 2015.11.24 03:00

[김영삼 1927~2015] 에피소드 쏟아낸 YS

- DJ와의 경쟁
100만 서명운동 제의받자 "100만명이 뭐꼬, 1000만명은 해야지"

- 직설화법
MB가 초청한 청와대 오찬서 전두환 "와인 더 없냐" 하자
YS "술 먹으러 왔나" 소리쳐

- 특유의 사투리 발음
변화와 개혁을 '배나와 개핵'
통역이 못 알아듣자 "경상도말 왜 몰라, 배아라"

김영삼(YS) 전 대통령은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숱한 에피소드를 남겼다.

YS는 남다른 승부욕의 소유자였다. 특히 김대중(DJ) 전 대통령과의 경쟁 과정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겼다. 측근들에 따르면

YS는 언론사 카메라가 DJ 쪽으로 향하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럴 때 즐겨 사용한 방법이 비서진을 불러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카메라 기자들은 다시 YS 쪽을 향하며 플래시를 터뜨렸다.

1980년대 당시 YS와 귓속말을 주고받는 장면이 카메라에 자주 찍혔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뒷날 '무슨 얘기를 하시더냐'는

기자 질문에 "별 얘기 없었어. '덥다. 문 좀 열어라'고만 하더라"라고 했다.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당시 이홍구(맨 왼쪽) 국무총리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크게 웃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젊은 시절의 YS가 축구 경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1995년 10월 당시 이홍구(맨 왼쪽) 국무총리가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담소를 나누며 크게 웃고 있다(왼쪽 사진). 오른쪽은 젊은 시절의 YS가 축구 경기 도중 휴식을 취하며 동료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제공

 

1991년 지방선거가 다시 실시되면서 YS와 DJ는 유세 경쟁에 돌입했다. DJ의 갑작스러운 기자회견 소식을 접한 YS는 다음 날 아침

기자회견 자리를 급조했다. 급하게 만들어진 자리다 보니 별다른 내용이 있을 리 없었다. YS는 현안에 대해 짧게 언급을 한 뒤

중요한 선언이라도 할 듯 기자들을 바라보며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DJ는 나한테 늘 담배 얻어 피우던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떻게든 DJ를 공격해야겠다는 생각에 꺼낸 YS의 발언에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왔다.

양김(兩金)은 1986년 직선제 개헌을 위한 국민서명운동을 추진했다. 두 사람이 만난 자리에서 DJ가 먼저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100만인 서명운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하지만 YS는 "100만이 뭐꼬. 1000만명은 해야지"라고 말했다. DJ가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

인데 천만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냐"고 묻자, YS는 "누가 세리(헤아려) 보나?"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그의 승부욕은 대통령 취임 후 외국 정상을 만난 자리에서도 이어졌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외국 원수들, 특히 미국

대통령 만나고 오면 '기 싸움' 한 얘기를 아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며 "(한번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만나고 나서 '내가 꽉

눌러줬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조깅을 할 때 지기 싫어 전력 질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YS는 서민적이고 소탈한 풍모로 여러 차례 화제가 됐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 따르면 YS는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당시 만찬주로 국산 포도주인 '마주앙'을 내놓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뒤늦게 이 얘기를 전해

들은 박 전 의장이 그네들은 와인을 갖고 얼마나 잘 대접하는지를 따지는 사람들"이라며 만류했다.

직설화법은 YS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지난 2010년 8·15 때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로 자신과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함께 초대하자

전 대통령에게 다 들리도록 "전두환이는 왜 불렀노. (본인이 처벌했기 때문에) 대통령도 아니데이. 죽어도 국립묘지도 못 간다"

고 해서 청와대 관계자들을 당혹스럽게 했다. 이어진 오찬에서 전 전 대통령이 "와인 더 없느냐"고 했더니 YS는 "청와대에 술

먹으러 왔나"라고 소리쳤고, 그런 YS의 말을 듣다 화가 난 전 전 대통령이 일찍 자리를 떴다고 한다.

측근들에게는 '다짜고짜 화법(話法)'을 많이 썼다. YS 비서로 정치를 시작한 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은 "YS는 측근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니 그거 알재?'라고 물어보곤 했다. 우물쭈물하면 '한심한 놈'이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회상했다.

'픽션 같은 논픽션'도 적지 않게 만들어 냈다. 1992년 대선 유세차 속초를 방문했을 때 참모들이 써준 연설 원고에 "속초에는

함경도 분들이 많다"고 쓰여 있었다. 월남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YS는 실제 연설에서 "속초에는…속초에는…"이라며

몇 차례 머뭇거리다 "강원도 사람이 많습니다"라고 했고, 참모들은 거의 '기절'했다. '함경도'가 잘못 쓰인 것이라 생각하고

망설이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말한 것이다.

대통령 취임 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일 교사로 수업을 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수업이 끝난 뒤 한 여학생이 "할아버지는 어릴

 때 무슨 꿈을 꾸셨기에 대통령이 되셨나요?"라고 물었다. "중학교 때부터 대통령 꿈을 꿨다"는 정답을 기다리던 학생들에게 김 전

대통령은 "저는 숙면을 취하기 때문에 꿈을 꾸지 않는데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기자의 '우루과이 라운드' 질문에

"우루과이 사태?"라고 되물은 적도 있다.

YS 특유의 사투리 발음은 개그 프로그램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YS 청와대 에서 통역 비서관을 맡은 박진 전 의원도 "거제도 사투리

때문에 알아듣느라 애를 먹었다"고 했다. 1993년 방한한 미 클린턴 대통령과 면담한 YS가 '변화와 개혁'을 '배나와 개핵'으로 발음

했고, 이를 못 알아들은 박 전 의원의 통역이 끊겼다. YS는 이후 "박 비서관은 영어는 잘하는데 와 경상도 말은 못 알아듣노?

그것도 좀 배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