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서양식 능지처참 '殺千刀'… 인간은 왜 이리 잔인한가

yellowday 2015. 11. 7. 14:01


입력 : 2015.11.07 09:16

'아웃사이더' 작가 콜린 윌슨, 선사시대부터 범죄史 훑어

자아실현 욕구좌절 범죄 늘어… 통제 못하면 '히틀러' 출현
"범죄사로 본 인간 본성 성찰"

	서양식 능지처참 '殺千刀'… 인간은 왜 이리 잔인한가

인류의 범죄사|콜린 윌슨 지음|전소영 옮김|알마1000쪽|4만2000원


이것은 어쩌면 감추고 싶은 역사, 무대 뒤의 잔인한 이야기다. 영국 작가 콜린 윌슨(1931~2013)이 '인류의 범죄사'를 처음 펴낸 것은 1984년. 선사시대부터 현대까지 범죄의 역사를 훑으며 인간 폭력성의 근원을 탐구한 이 역작(力作)이 30년 만에 무려 1000쪽에 이르는 전면 재번역으로 출간됐다. 연쇄살인범의 등장과 신(新) 정치적 테러리즘에 대한 부록이 새로 추가된 까닭도 있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은 늘 '지금'의 언어로 다시 번역되어야 한다는 적극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윌슨은 스물네 살에 썼던 문학비평서 '아웃사이더'로 단숨에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후 거침없는 문장력과 박람강기(博覽强記)의 지력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저술가가 된 그는 항상 "인간은 왜 이토록 잔인한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했다.

비록 사진이나 그림 한 장 없지만, 단순한 '19금(禁)'을 넘어, 잔혹을 감당할 굳은 결의를 마친 성인에게도 쉽지 않은 텍스트다. 사타구니부터 어깨까지 산 채로 말뚝에 꿰어 처형했다는 기원전 12세기 아시리아 왕, 수천 번에 걸쳐 조금씩 살을 칼로 발라내는 형벌 '살천도(殺千刀)'를 좋아했던 로마 황제 칼리굴라, 기독교인의 몸에 타르를 발라 살아있는 인간 횃불로 사용했던 네로 황제 시대 로마인 등을 작가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건조하게 묘사한다. 현대 범죄의 도착과 가학의 구체성에 이르면 차마 언어로 옮기기 혐오스러울 정도다.

특정 사례 관찰에서 '현미경'을 서술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면, 시대 경과에 따른 통시적 관점에서는 심리학자 매슬로의 인간 욕구 단계설을 활용한다.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소속감의 욕구, 애정 욕구, 자아실현 욕구 등 다섯 가지 욕구. 범죄 역시 19세기 초까지는 먹고살겠다는 생존형 범죄가 대부분이었고, 이후 시대 변화에 따라 다음 단계의 욕구가 적절한 비율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며 범죄와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20세기 이후에는 자아실현의 욕구와 관련된 범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다.


	서양식 능지처참 '殺千刀'… 인간은 왜 이리 잔인한가
 
네로 황제는 마음이 내킬 때마다 처형을 명령하는 습관에 쉽게 젖어들었다. 완벽하게 자신에게만 몰두했고 방해가 되면 제거했다. 이탈리아 화가 필리피노 리피의 프레스코화‘성 베드로의 순교와 네로 앞에서 마술사 시몬과의 논쟁’(1457~1504). /Getty Images 멀티비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사례의 독서에 지쳤을 무렵, 작가는 두 가지 희망을 이야기한다. 베토벤과 대니얼 디포의 경우다.

우선 베토벤과 '독선(獨善)'. 베토벤은 자신을 언짢게 한 웨이터에게 수프 접시를 집어던진 적이 있다. 전형적인 독선가의 폭력적 행동이다. 하지만 장기 목표를 이루려면 인내와 자기 규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예술가는 깨닫는다. 이후에는 한 방울의 에너지도 낭비하지 않는 실천의 삶을 살았다는 것. 반면 독선가들은 분노를 폭력으로 분출하면서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했다. 윌슨은 '감정의 요실금'이라는 표현을 썼다. 반복되면 결국 자기 침식의 과정으로 빠져들고, 적절한 '배출구'를 찾지 못한 탓에 내면은 늪이나 오수 처리장으로 변해버린다. "이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스탈린·히틀러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폭력적인 사람들이 결국 '정신병자'로 생을 마감한 이유"라고 윌슨은 설명한다.

또 하나의 희망 사례는 '로빈슨 크루소'를 쓴 대니얼 디포다.


베토벤과 스탈린처럼 구분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인간 안에도 두 가지 기질이 동시에 있다. 윌슨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디포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역동적으로 서술한 뒤, 인간 범죄성의 핵심을 간파해낸다. 범죄성과 창의성, 폭력과 지성, 기회주의와 고결성을 모두 갖춘 인물이었다는 것. 마키아벨리처럼 권력을 향해서는 항상 지름길을 찾았지만, 자신의 부정직함을 씁쓸하게나마 솔직하게 드러내는 자질 덕분에 소설가로서 성공했다. 인생 전반의 '기회주의자 사기꾼'과 인생 후반의 '위대한 소설가'. 그리고 이렇게 결론 맺는다. "범죄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잘못된 방식이다. 설혹 부정직한 방법으로 눈앞의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자기 파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된다." 원제: A Criminal History of Mankind.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