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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법원직)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에피소드(우리 큰애가) - 지난 기억들2 15'7/28 yellowday

yellowday 2015. 7. 29. 02:57

 

 

 

 

 

 아이가 공무원(법원직) 시험을 준비하며 겪었던 에피소드

 

 

대학 3학년이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 오더니

엄마! 잘 나가던 친구 아빠들이 실직을 했다하데~

IMF가 닥쳐서 사업도 그만두고, 회사도 그만두고

우리 아빤 괜찮아?

 

그 때까지만 해도 그냥저냥 대학 4년 졸업만 하면 취업을 하든 결혼을 하든

별 걱정없이 장학금이나 조금씩 보태며 학창시절을 보내 있었던 시절이었다.

 

그랬는데, 갑자기

엄마! 이래선 안되겠다. 나도 뭔가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하는것이다.

그러더니 저나름대로 시험공부를 시작했나 보다.

친구들은 공부하러 속리산으로 들어갔네, 어느 절간으로 들어갔네 했지만

아래로 연년생인 남동생과 막내 여동생도 대학 재학중이였으므로

거기까진 요구를 하지 않았다.

 

고시학원 등록이 고작이였다.

아침 6시에 집을 나서 저녁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왔다.

 

마침내 시험 날짜가 되어 처음이라 나도 시험장까지 동행을 하게 되었다.

시험장이 경기도 인천고교라기에 그런가보다하고 서울 서초 오빠네서 留하고 아침 일찍 출발을 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이게 웬 황당사건인가

인천고교에 도착하니 수험생이 한 명도 없을뿐더러 시험장이란 현수막조차도 걸려 있지 않았다.

 

아뿔싸!

다니던 학원으로 전화를 해봐야겠는데 그 땐 핸폰도 없던 시절이라 공중전화 부스를 겨우 찾아내어 알아봤더니

시험장이 한남대교 건너 강북에 있는 인창고교인데 잘못 듣고 인천고등학교로 간것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세상에나!

 

이종사촌 오빠가 시험장까지 데리고 갔었는데 황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하고

어쩌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거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으니 그래도 시험지 구경은 하고 가야할게 아닌가

다행히 일요일이였고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 차가 그리 많지가 않았다.

 

어떻게 운전을 했는지 인천에서 서울 한남대교까지 17분 걸렸다.

그런데 대교에선 차가 진입을 못할 정도로 꽉 막혀 있는것이다.

일단 이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택시를 탔다.

기사 아저씨께 전후 사정을 얘길 했더니 사이사이로 끼어들기를 해가며

겨우 다행히 제시간에 시험장에 내려 주었다.


휴!하고 숨을 가다듬고 나서야 수험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같이 세수도 하지 않은듯

수염도, 심지어 손톱도 깎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이니 알만하지 않는가

 

*                *            *

 

남자에게 주는 軍 가산점 5점은 여학생들에겐 베르린 장벽보다 더 높게만 여겨졌다.

그래서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친구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는지 그 이듬해부터 군 가산점제도가 없어진것이다.

그래도 시험에 합격하리란 기대는 솔직히 털끝만큼도 하지 않았었다.

 

D데이 한 달 전부턴 점심 먹는 시간도 아까워 붕어빵으로 대충 때워가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드디어 합격자 발표를 하던 날! 현관을 들어 오는데 기분이 약간 좋아 보였다.

엄마 혹시 꿈꾼거 없냐며 묻는다. 그래 꾸었지! '무슨 꿈인데?' 꿈 얘길 채 하기도 전에

'나 합격했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꿈인지 생신지 비몽사몽간에 둘이 얼싸안고 거실에서 팔딱팔딱 뛰었다.

아래층에 울리는줄도 모르고...

 

지금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재수까지 해가며!

세월이 지나니 진급도 하고, 일에 대한 자긍심도 있고,

가정도 꾸려가며 열심히 살고 있는 딸아이의 모습에 격려와 찬사의 박수를 보.낸.다.

 

        15'7/28  지난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