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방 속 한 권의 책… 떠나는 길 설렘은 두 배
중국, 당시의 나라
타고난 역마살을 어쩌지 못해 여행이라면 밥 먹는 것보다도 좋아하지만 좀처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삶이 나를 속인 지 오래다. 어쩌다 얻은 촌음에 효율적인 여행을 하려면 기획 여행을 따라가는 게 좋은데 정해진 일정에 묶이는 것 역시 질색이라 그저 애꿎은 세월만 흘려보내고 있다. 세렝게티나 갈라파고스 같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를 찾아 세계 일주를 하자는 언론사의 제안을 손에 쥔 채 우울한 날들을 견디고 있는 나로서는 당시(唐詩)의 고향들을 찾아 중국 전역을 누빈 저자가 그저 부럽기만 하다.
당나라 도읍이었던 시안에서 시작해 흔히 천당에 비견되는 미향 항저우에서 끝이 난 저자의 여정은 무려 11년에 걸쳐 중국 전역을 종단·횡단하고도 남는 1만2500㎞ 대장정이었다. '중국, 당시의 나라'는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한숨에 읽어 내릴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이 책을 끼고 저자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으로 여행을 떠날 일이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천년 역사의 유적과 더불어 이백, 두보, 백거이는 물론, 저자가 가장 좋아한다는 시인 이상은과 중국 시인 중 생태적 감성이 가장 뛰어나 내가 은근히 흠모하는 왕유의 시를 음미할 수 있는 환상적인 고품격 여행이 될 것이다.
저자는 당나라 유적이 아니라서 대충 훑어보고 떠났다지만 나는 북경의 이화원, 소주의 졸정원, 유원과 더불어
중국 4대 정원의 하나인 청나라 피서산장이 꼭 보고 싶어졌다. 왕유가 그곳에서 지었다는
"창 너머 운무가 옷 위로 피어오르고/
휘장을 걷으니 산과 샘이 거울 속으로 들어옵니다"
라는 시구를 읽으며 그의 다른 시 '죽리관(竹裏館)'이 보여준 정경(情景)의 교융(交融)을 다시금 느낄 수 있어 반가웠다.
테마 여행의 백미는 바로 이런 것이리라.
-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김지호 기자
우리는 일단 중국의 규모에 기가 죽지만 당시(唐詩)는 그로 인해 나른해진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준다. 아예 당나라 지도를 들고 떠난 여행이었지만 장도의 끝에 선 저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중국은 당시의 나라라는 결론을 내린다. 미국에 정착한 초창기 영국인들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새들이 미국 하늘을 나는 날 미국은 비로소 영국이 될 것이라며 여러 해 동안 영국에서 셰익스피어의 새들을 잡아다 뉴욕자연사박물관 계단에서 날려보냈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은 종종 연설이나 사석에서 당시를 암송하며 본인의 의중을 표현한다. 셰익스피어가 영국을 이해하는 분명한 한 축이라면 중국이라는 코끼리를 더듬기 전에 당시에 대한 이해는 필수일 듯싶다. 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