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화양연화(花樣年華) - 시니어 에세이

yellowday 2015. 5. 13. 22:42

입력 : 2015.05.13 09:45

가족은 그녀의 관 앞에 놓인 작은 상자를 열었다. 나비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참석자들이 받은 봉투를 열자 거기서도 일제히 나비들이 날아올랐다.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그렇게 이 세상에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정신의학자 퀴블러로스는 타임지가 선정한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사람으로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어렸을 적 그녀는 폴란드의 한 유대인 수용소에 갔을 때 벽에서 수많은 나비 그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유리조각이나 손톱으로 그린 듯한 나비들이었다.

40년간 죽음에 대해 연구하면서 그녀는 마침내 인간의 몸은 나비가 날기 위한 번데기처럼 영혼을 감싸고 있는 허물에 불과하다고 깨닫는다. 그리고 2004년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이를 표현하는 특별한 장례 순서를 원했다. 얼마 전 올해 처음으로 나비를 보며 반가움에 앞서 그녀를 떠올린 건 최근 주변에서 몇 차례나 부음을 접한 까닭이다. 친구의 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아흔 안팎의 연세들이셨기에 어쩌면 호상이라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가신 이에 대한 추모와 죽음이 생각보다 멀지 않을 수 있다는 남은 자로서의 회한에 젖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구동성 소원

-중략-

 

예로부터 천수를 누리다 고통 없이 편히 죽는 ‘고종명(考終命)’을 5가지 복 가운데 하나로 꼽았고, 지금은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고 죽는다는 ‘구구팔팔이삼사’가 노년의 바램이다. 하지만 희망사항일 뿐, 어찌 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건강한 삶을 최대로 유지하는 ‘건강수명’이 한국인은 70.7세라고 한다. 평균수명은 81.2세라니 생을 마감하기까지 10년 정도 병치레를 한다는 얘기다. 앞서 치매와 뇌졸중 노부부의 경우처럼 당신들은 물론 가족도 힘든 기간이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생의 ‘건강한 마감’ 웰다잉(Welldying)을 위한 준비가 정말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고 수용하는 자세를 ‘죽음학’ 전도사인 서울대 의대 정현채 교수는 강조한다. 죽음을 수용하면 오히려 현재를 더 충실하게 살 수 있으며, 세상을 보는 안경이 달라져 타인에 대한 공감과 연민도 커진다고 한다. 어느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교수는 죽음의 자각이 배려심을 키운다는 한 미국 심리학자의 실험 결과를 들려줬다. 공동묘지 안팎에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노트북을 떨어뜨렸더니 묘지 안의 사람이 밖의 사람보다 40%나 더 많이 도와주더란 것이다.


질 줄 알아야 꽃인 게지

결국 ‘죽음은 꽉 막힌 벽이 아니라 새 삶 향한 시작,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문’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고 보면 만물이 소생하는 봄에 웬 칙칙한 죽음 이야기냐가 아니라, 오히려 죽음을 꺼내 생각해봄이 마땅할지도 모른다. 언젠가 지하철 스크린도어 광고판에 오른 소설 속의 대화 한 줄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지지 않는 것은 꽃도 아니여. 질 줄 알아야 꽃인 게지.” 그 말 그대로 눈부신 자태를 접고 땅에 내려앉는 꽃잎에서, 또 죽은 허물을 버리고 꽃으로 날아오르는 나비에서 새로이 열리는 문 너머 세계를 엿볼 수 있으려나.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지는 존재일망정 누구나 한 번쯤은 삶에서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꽃처럼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의 순간 말이다. 영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이 표현은 그러나 한 번만 가능한 건 아니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매 순간이 화양연화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꽃 무더기 세상을 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들 피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아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즐기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봅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도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지난 주말엔 아버지를 여읜 친구와 이해인의 시마따나 발이 부르트도록 꽃길을 걸었다. 헤어질 때는 일본의 단시 하이쿠보다 더 짧은 한마디를 나눠 가졌다. ‘나도 한 송이 꽃, 너도 한 송이 꽃!’ 스스로들 꽃이라 칭했으니 이제 언제 어디서든 될성부를 것 같은 화양연화(花樣年華)다.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가 팔랑팔랑 속삭여주는 듯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니고, 내년 봄도 너무 머니 오늘 이 봄을,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사랑하라고.  w조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