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문화전 3부 '진경산수화'展… 겸재 등 90여점 DDP 전시
초여름인 듯 산야(山野)가 연두와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원생(院生)들은 모두 수업 중인가 보다. 허드렛일하는 노비 하나만 그물인지 쇠스랑인지 모를 것을 어깨에 메고 내려오다 궁금했는지 서당 쪽 울타리 안을 넘겨다보고 있다.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의 그림 '도산서원'이다. 겸재는 퇴계(退溪) 이황(1501~1570)의 유적인 도산서원을 한 폭의 부채 그림으로 실감 나게 묘사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14일 개막한 '진경(眞景)산수화-우리 강산, 우리 그림'전에 겸재를 비롯해 조선시대 화가 21명의 진경산수화 90여점이 나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1부 '간송 전형필', 2부 '보화각'에 이어 세 번째로 마련한 전시다.
- 겸재 정선 ‘금강내산’. 종이에 수묵, 부채 28.2×80.5㎝.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조선시대 진경산수화를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는 겸재의 59세 무렵 작품인 '성류굴(聖留窟)'부터 84세로 사망하기 직전에 그린 걸로 추정되는 '금강대(金剛臺)'까지 고루 출품됐다. 조선시대 명승지인 관동팔경, 단양팔경, 박연폭포 등을 통해 연대별 겸재 화법의 변화를 감상할 수 있다. 최완수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은 "진경산수화는 관념 산수가 아닌 '진짜 경치'를 소재로 그린 그림"이라며 "퇴계 이황, 율곡 이이에 의해 토대가 마련된 조선 성리학이라는 고유 이념을 바탕으로 우리 국토에 펼쳐진 진짜 풍경을 그린 한국 문화의 진수"라고 했다.
겸재의 또 다른 부채 그림 '금강내산(金剛內山)'은 금강산 1만2000봉우리를 수묵으로 담았다. 70대 중반쯤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메다꽂듯 내리찍은 암봉의 필획은 빠르고 예리하며 봉우리마다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현재(玄齋) 심사정(1707~1769),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 고송유수관도인(古松流水館道人) 이인문(1745~1821) 등 겸재의 진경 정신을 계승한 후예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특히 정조의 왕명을 받들어 강원도 영동 9군의 명승지를 세련된 필법으로 묘사한 단원의 그림은 겸재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내금강 외금강을 통틀어 금강산에서 가장 웅장한 전경을 자랑하는 구룡연(九龍淵)이 단원의 화폭에서 새로 태어났다. 120m 절벽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관객의 마음까지 씻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