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11.26 05:27
이해인 수녀 새 시·산문집 '…동백꽃처럼' 발간… 암투병 후 깊어진 영성 묻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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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광안리 수도원 산책정원 성모상 앞의 이해인 수녀. 그는“무료급식소에 계셨던 성모상인데 힘들 때면 그 앞에서 자주 기도드린다”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아직 살아 있는 것을 새롭게 감사하며 하늘을 보고 땅을 보고 이웃을 보네."
이해인 수녀(69·올리베따노 베네딕도회)의 2011년 첫날 일기다. 그가 암 수술을 받은 것은 2008년. 아직 관찰과 치료가 필요한 때였다. 201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그는 의학적으론 완치(完治) 상태다. 그리고 다른 암환우들을 위해 한마디라도 더 따뜻한 말을 전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다. '저러다 혹시…'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지만 그는 말한다. "인생의 오후(午後)를 즐기고 감사하고 있어요."
그의 신간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마음산책)은 이해인 수녀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놓을 책이다. '만년 여고생 시인' 같은 이미지 말이다.
지난달 만난 수녀는 "저라고 언제나 꽃 보면 좋고 그러겠어요?"라며 웃었다. 깔깔 웃는 감성은 여전히 소녀다. 하지만 책갈피마다 전해지는 영성(靈性)의 깊이는 그를 이제 시인이라기보다는 영성가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다. 병마는 그에게 선물이었던 셈이다. 11월 가톨릭 '서울주보'에 주간 연재하는 다섯 편의 글에서 묻어나던 영성이 이 책에 가득하다.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 주변의 모든 이와 사물에 대한 사랑, 수녀원이라는 제약 많은 공간에서의 50년이 준 공동체에 대한 고마움, '(…) 판단은 보류하고/ 그냥 깊이 생각해보자'(시 '말과 침묵' 중)는 겸손과 배려, '(…)미움의 지옥/ 불화의 연옥/ 다시 만들지 말고/ 평화의 천국을 앞당겨 살 수 있게/ 오늘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해요'(시 '용서 일기' 중) 같은 용서의 마음까지.
이번 '…동백꽃처럼'은 지금까지 수녀의 책에선 없던 형식을 취했다. 수녀의 몇 년치 일기장을 통째로 가져다 편집해 책 말미에 붙인 것. 일기들은 영화로 치면 '메이킹 필름' 역할을 한다. 가령 이런 경우. '보경아 보경아 보경아/ 아빠가 한 번/ 엄마가 한 번/ 오빠가 한 번/ 다른 목소리의/ 같은 그리움으로/ 네 이름을 불러본다(…)'(시 '단풍나무 숲의 보경에게' 중). "지구센터에서 피정자들 미사에 나도 참여하고 오전에는 박보경양의 엄마를 면담하고 점심 후 2시 37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엄마 같은 마음, 큰언니 같은 마음으로 보경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신자도 아닌 그에게 팔찌 묵주도 건네주고는 헤어졌다."(2012. 6.6 일기) 수녀가 어떤 마음으로 시를 한 수, 한 수 짓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빨랫줄에 널려 있는 무청, 한데 엮인 시래기 잎새들을 보니 애잔한 마음. 무들은 다 떠나보내고 푸른 잎만 남아서, 서로에게 엮여서 겸손을 실습하고 있네."(2012. 11.5 일기) "헌옷을, 낡은 옷을 입는 편안함으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2012. 12.4 일기)
이런 감성·영성 그리고 감사와 기쁨을 전하는 이해인 수녀. '…동백꽃처럼'을 읽는 것은 '시인 이해인'을 만나러 갔다가 '영성가 이해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경험을 안겨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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