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界의 觀光地

한계에 도전했던 잉카의 흔적, 해발 2450m 텅 빈 도시에 남았네

yellowday 2014. 6. 20. 13:41

 

입력 : 2014.06.1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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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것은 뒤에 온다. 이 말은 페루에 가기 전까지만 성립된다. 그 사실을 깨달은 것은 마추픽추 정상에 올라서였다. 마추픽추에 가려거든 가장 뒤에 가라. 그렇지 않으면 그 어디를 가도 그 이하를 볼 것이다. 내게 가장 좋은 것이란 자연이 펼치는 경이로운 광경이 아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한계를 무릅쓰고 거기에 무엇인가를 도모했던 흔적이다. 6000m급 고봉 준령들로 둘러싸인 성스러운 계곡을 지나 2800m급 봉우리들 사이에 숨은 듯 공중에 떠 있는 옛 잉카인들의 거처, 마추픽추(해발 2450m)가 바로 그런 곳이다.

마추픽추[Machu Picchu]
해발 2,430m에 자리한 계단식 성곽 도시. 1911년 예일대학교의 역사학자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에 의해 발견되었다. 15세기 중반에 잉카(Inca)인의 여름 궁전이나 왕의 은신처로 건설되었을 거란 설이 유력하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근거지이자 탁월한 건축적, 고고학적 중요성을 지닌 이곳은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 열대 산악림 가운데에서 놀라울 정도의 절경을 자랑한다. 특히, 경사면으로 이루어진 잉카인들의 옛 농경지와 제단 등에 정교하게 돌을 쌓은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현재 유네스코의 세계 복합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마추픽추 경사 계단식 농경지. 맨 위에 망지기의 집이 보인다. /함정임 제공

 

마추픽추에 오른 것은 페루 입성 일주일 뒤였다. 나에게 주어진 여정은 아흐레 동안 수도 리마를 중심으로 동쪽(쿠스코, 마추픽추)과 남쪽(나스카)을 잇는 삼각형의 동선(動線). 페루는 카리브해의 섬들을 포함한 라틴아메리카의 33개국 중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영토를 가진 나라.

 

 

 

(위부터) 삭사이와망에서 내려다본 잉카 제국의 수도 코스코 /

하늘을 가리는 첩첩산중 봉우리들이 가득하다. /함정임 제공

 

세 가지 독특한 자연 지형과 기후 변화를 보이는데, 아마존 밀림 지역인 셀바는 열대성 기후, 안데스 고원 지역인 시에라는 일교차가 심한 고산 기후, 장장 2300㎞에 이르는 남태평양 연안 지역인 코스타는 부윰한 해안 사막 기후가 그것이다. 페루 여행 최적기인 7월이었지만 지형의 고저와 위치에 따라 하루에도 여러 차례 일기가 달라졌다.

페루의 모든 것은 태양으로 향한다. 일주일, 아니 열흘을 바쳐 마추픽추에 간다고 해도, 모두가 벼랑 끝에 숨은 듯 떠 있는 불가사의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 구름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 성스러운 계곡 마을 우르밤바에서 하룻밤을 묵고, 이른 아침 버스와 기차를 갈아타고 마추픽추 초입에 있는 마을 아구아스 칼리엔테스에 도착하니 열한시경. 지난밤 보았던 우르밤바의 하늘은 별을 손으로 딸 수 있을 정도로 맑고 깊었다. 구름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추픽추의 창공에 펼쳐질 파란 하늘과 번쩍이는 태양, 그리고 그 아래 눈부시게 펼쳐질 폐허를 떠올리고자 지레 전율이 일었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 광장에는 오직 한마음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자들로 꽉 차 있었다. 잉카식 뷔페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버스를 타고 마추픽추로 향했다. 버스는 봉우리에 오르도록 에도는 비탈길을 천천히 달렸다. 경사각에 따라 좌우로 몸이 흔들렸다. 사방을 둘러보았다. 첩첩산중 봉우리들에 가려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보였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추픽추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은 정상에 있는 망지기의 집이다. 구름은 정상으로 올라올수록 하늘을 가리더니 바로 앞에 마주 보고 있는 젊은 봉우리 와이이나픽추의 허리를 싹둑 잘라 먹고 있었다.

 

 (위부터) 마추픽추 서쪽사면 /

마추픽추에 있는 한 그루 생명의 나무(중앙)와 태양의 신전(오른쪽).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태양을 향한 곳이다. /함정임 제공

구름, 아니 고산증 탓이었을까. 북태평양을 건너 적도를 지나 일주일을 바쳐 그곳에 이르렀는데, 도무지 먹먹한 마음뿐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순간의 내 눈, 내 마음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경이로웠던가? 아니다. 감격스러웠던가? 그것도 아니다. 조금 슬펐던가? 오오, 그래서 조금 울고 싶었던가? 내 눈은 치솟은 절경 속에 처연히 비어 있는 신록의 폐허를 더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한때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말소리, 발소리, 웃음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들의 목마름, 그들의 배고픔, 그들의 갈망을 달래주던 시원한 물줄기를 보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비췄던 싱그러운 햇빛을 느끼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간 것일까. 사람들은 망지기의 집을 떠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고, 마당에는 나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들은 콘도르 신전과 태양의 신전을 지나가거나 빙 둘러 우물에 모여 있었다. 한달음에 달려 내려가려는 발걸음을 붙잡았다. 무릎을 꿇고 신발끈을 다시 묶었다. 그리고 한 발 한 발 폐허 속으로 내려갔다. 구름은 와이나픽추의 허리를 벗어나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었고, 정수리 위에서는 정오의 태양이 번쩍이고 있었다. 태양을 향해, 아니 폐허를 향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가장 좋은 것은 뒤에 온다. 비로소 나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보든 소박해질 것이고, 그리하여 자유로워질 것이었다.

 

라틴아메리카 페루의 안데스 산중의 마추픽추에 닿기 위해서는 북태평양을 건너고, 북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를 거치는, 폭넓은 행로를 밟아야 한다. 북미에서 리마까지는 8시간 소요.

 

리마에서 국내선으로 해발 3400m에 위치한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에 간 다음 버스나 기차를 타고 마추픽추로 향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고산증을 대비해야 한다. 이틀간 견딜 수 있는 고산증 알약을 비행기 타기 전에 복용하거나, 수시로 마테차를 마시는 게 좋다. 숙소는 일정에 따라 잉카 제국의 옛 건물을 허물고 그 위에 스페인식 식민지 건물을 올려 유럽적인 분위기가 서린 쿠스코나, 성스러운 계곡에 퍼져 살고 있는 안데스 사람들의 전통 마을 중 한 곳, 마추픽추 초입의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을에서 묵는다. 성스러운 계곡이라는 뜻의 우르밤바 강은 마추픽추를 에워싼 고봉들과 마을들을 굽이굽이 흘러 아마존으로 흘러들어 간다. 나는 이 강 이름을 딴 마을의 산 아우구스틴 호텔에 묵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수녀원을 개조한 호텔로 입구에 레몬 나무가 서 있고, 방과 정원이 운치 있게 가꾸어져 있다.

마추픽추와 함께 페루에 가면 반드시 추천하는 곳이 지상화 유적지 나스카 라인과 세상에서 가장 높은 산정 호수 티티카카(해발 3800m)이다. 리마에서 나스카 가는 길은 판아메리카 하이웨이를 따라 남태평양 해안을 달려 내려가는데, 아침 일찍 출발해서 점심 즈음 새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바예스타 섬을 돌아보는 것도 추천한다. 새똥 화석(鳥糞石·조분석)으로 뒤덮인 이 섬을 통통배를 타고 한 바퀴 돌아보고 나면 로맹 가리가 소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는다’에 신비롭게 환기한 새 떼의 출처를 가늠할 수 있다. 나스카에서 350여개 동식물로 이루어진 지상화를 보려면 목숨을 건 30분간의 경비행기 곡예 드라이브에 참가해야 한다. 경비행기의 비상 여부는 그날 아침의 안개 상태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