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빙하 마을' 샤모니몽블랑
봄이 무르익는 몽블랑 밑 프랑스 작은 마을 샤모니몽블랑(Chamonix Mont-Blanc·이하 샤모니)에서 겨울로 가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20분이다. 머리에 눈을 덮어쓴 3000~4000m 준봉들에 둘러싸여 하늘이 작은 마을. 이 마을에서 몽탕베르(Montenvers)행 빨간색 산악 열차에 몸을 실었다. 목적지는 총연장 14㎞로 프랑스에서 가장 긴 빙하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빙하의 바다'라는 뜻). 알프스 산록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는 열차에서 내려다본 샤모니 마을이 까마득했다. 20분 만에 한라산보다 조금 낮은 해발 1913m의 몽탕베르 역에 도착하니 협곡 사이로 거대한 빙하가 드러났다. 햇볕은 따사로운데 바람이 불 때마다 냉기가 옷 속을 파고들었다.
- 프랑스 샤모니에는 늦은 봄까지 겨울이 공존한다. 샤모니를 출발한 빨간색 산악 열차가 몽탕베르역에 도착하고 있다. 왼쪽 계곡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긴 빙하인 메르 드 글라스의 장관이 펼쳐진다. / 샤모니 관광안내사무소 제공
두께 200m에 달하는 메르 드 글라스의 빙하는 해마다 50m의 속도로 흐른다. 케이블카를 타고 암벽 중간까지 하강하니 그 아래로 수직암벽을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수백 개의 계단이 빙하가 있는 계곡 바닥까지 이어졌다. 크레바스 추락 등의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현지 가이드 회사에서 나온 전문 가이드가 동행했다. 가이드 크리스씨는 북한산에 갈 때 신는 등산화를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칼날같이 파고드는 얼음 조각에 종아리를 찔리지 않으려면 군화처럼 발목이 훨씬 긴 등산화를 신어야 한다고 해 근처 등산용품점에서 새로 빌렸다.
쌓인 눈 속에 발이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테니스 라켓 같은 눈신(snowshoe)을 덧신고 걸었다.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눈부신 빙판 위를 걷는 동안 계곡의 얼음을 훑고 온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빙하 양쪽 벽에선 연신 포탄 터지는 굉음이 울렸다. 크고 작은 바위가 계곡 아래로 구르며 내는 소리다. 크리스씨는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줄어 1985년 이후 빙하 높이가 계곡 아래로 수십미터 낮아졌다"며 "빙하와의 마찰로 분리된 바위들이 빙하가 녹아 없어지자 굴러 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눈신을 신고 걷느라 체력을 많이 소모했는지 배가 고팠다. 배낭에 넣어간 한식 점심 도시락을 꺼내 빙하 위에 펼쳤다. 계곡 바람에 차갑게 식은 밥이 꿀맛이었다.
- 메르 드 글라스를 찾은 관광객들이 빙하 위를 걷고 있다. 크레바스(빙하·눈의 갈라진 틈)에 빠져 추락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로프로 서로 묶고 걷는다. / 코오롱 FnC 제공
- 에귀 디 미디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알프스 설원. 전망대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내려간 스키어들이 고원의 너른 평지에서 약 25㎞에 이르는 발레블랑슈 활강을 준비하고 있다. / 김태훈 기자
샤모니는 겨울 스포츠 천국이다. 1924년 제1회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이곳엔 해발 2000 ~3000m 높이에서 활강할 수 있는 스키 코스가 곳곳에 널려 있다. 스키, 스노보드는 물론이고 개썰매도 즐길 수 있다. 스키장은 대부분 4월 말까지 운영되지만 5월까지 문을 여는 곳도 있다. 가장 높고 긴 코스를 즐기려면 케이블카로 해발 3842m인 에귀 뒤 미디(Aiguille du Midi) 봉우리까지 이동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수직으로 30분쯤 오르는 사이 오른쪽으로 폭포처럼 흐르는 보솜 빙하의 장관이 펼쳐졌다.
에귀 뒤 미디 정상. 고산 증세로 어지럽고 가슴이 답답했다. 봉우리 전망대에서는 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에 걸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위용을 360도로 감상할 수 있다. 전망대에 최근 새로 설치된 유리 상자 '파 당 르 비드(Pas dans le vide)'에 들어가니 사방이 투명 유리다. 발아래로 까마득한 계곡이 추락의 공포를 불러일으켜 아찔했다.
스키어들은 에귀 뒤 미디에서 폭이 채 1m 도 되지 않는 칼날 같은 아레트(ar�te·빙하의 침식작용에 의해 생긴 험준한 능선)를 걸어서 전망대 아래 너른 설원으로 내려갔다. 여기서부터 메르 드 글라스까지 약 25㎞에 걸쳐 펼쳐진 빙하와 눈의 계곡이 발레블랑슈(Vall�e Blanche·'흰 계곡'이란 뜻). 스키를 타고 최정상에서 미끄러져 달리는 사이 그랑 조라스(Grandes Jorasses)와 드뤼(Drus) 등 지각의 융기와 빙하의 침식작용이 함께 만든 설산의 높고 멋진 봉우리들을 감상할 수 있는 코스로 유명하다. 에귀 뒤 미디에서 몽탕베르까지 4~6시간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식당을 들르기도 한다. 스키를 배워 다음에 온다면 빙하 속 식당에 꼭 가봐야겠다.
! 여행정보
항공편은 서울에서 파리를 거쳐 스위스 제네바로 들어가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이 비행편이 없으면 런던으로 우회해 제네바로 들어갈 수도 있다. 제네바에서는 제네바공항에서 샤모니행 직행버스를 탄다. 이동 거리는 85㎞. 알프스산맥을 통과해 샤모니까지 약 1시간30분 정도 소요되며 요금은 왕복 55유로.
시간이 넉넉하면 파리나 리옹 관광을 즐기고 열차를 이용해 샤모니로 들어갈 수 있다. 파리 에서 출발하는 야간열차나 리옹에서 출발하는 열차가 모두 생제르베 르파예(St Gervais le Fayet)까지 연결된다. 여기서 몽블랑 익스프레스로 갈아타고 샤모니(샤모니몽블랑역)까지 들어간다. 거리는 약 23㎞.
샤모니에서 이동은 셔틀버스와 일반버스, 케이블카, 트램 등을 이용하는데 스키장과 패키지로 운영한다. '샤모니 패스(Chamonix Le Pass)'는 브레방-플레제르, 발므, 그랑몽테 지역에서 이동하거나 이 지역의 스키장을 이용할 때 쓴다. 에귀 뒤 미디 전망대와 몽탕베르-메르 드 글라스, 발레블랑슈까지 포함한 샤모니 전 지역의 스키장, 수영장, 박물관, 셔틀버스를 무제한 이용하려면 '몽블랑 언리미티드' 패키지를 구입하면 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영문 웹사이트(www.chamonix.com)에서 얻을 수 있다.
샤모니 여행을 마치고 제네바를 통해 귀국하는 길에 국경을 맞댄 두 도시 사이에 있는 레만호(湖)와 호수를 끼고 있는 세계 최고의 휴양도시 몽트뢰를 빼놓을 수 없다. 호숫가에 서 있는 시옹성(城)과 그룹 퀸의 전설적인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명물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