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낯뜨거운 性불러낸 '19禁' 박물관…1910년대 국내 최초 에로틱 사진 보니

yellowday 2014. 6. 15. 21:28

 

입력 : 2014.06.15 11:30 | 수정 : 2014.06.15 11:40

낯 뜨거운 性을 불러내다파주 예술마을 헤이리에 ‘19금’ 박물관
에로틱아트뮤지엄 구삼본 관장


	경기도 파주 에로틱아트뮤지엄 구삼본 관장.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경기도 파주 에로틱아트뮤지엄 구삼본 관장. photo 이경민 영상미디어 기자
1910년대 흑백사진 속에 상투 튼 남정네와 기생인 듯 젊은 여인이 발가벗고 정사를 벌이고 있다. 도포자락에 갓 쓴 양반이 기방에서 문란한 행위를 하고 있는 사진도 있다. 한쪽 벽면에는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한 한·중·일 춘화가 에로틱 삼국지를 벌이고 있다. 일본의 춘화는 과장되고 거침이 없는 반면 결혼하는 딸에게 성교육용으로 줬다는 중국 춘화는 비교적 점잖다. ‘국내 단 한 점’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는 조선시대 청화백자에는 특이하게 남자의 성기 문양이 그려져 있다.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서양화가 안창홍의 대작도 눈에 띄고, 음화전시 혐의로 전시된 그림이 소각처분을 받았던 ‘문제 작가’ 최경태의 작품을 모아놓은 방도 있다. 김종학의 누드화, 이왈종의 춘화도 등 예술작품도 있지만 누드가 그려진 지포라이터, 중국 청나라 시대 요정에서 사용하던 누드화 그릇, 남근 조각 등 소품들도 다양하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예술마을 헤이리에 ‘19금(禁)’ 박물관이 생겼다. 세계 각국의 성 풍속도를 알 수 있는 에로틱 작품, 유물, 사진 등 1000여점을 전시해 놓은 ‘에로틱아트뮤지엄’이 6월 4일 개관했다. 낯 뜨거운 성을 공개적인 장소로 불러낸 이는 이곳을 만든 구삼본(59) 관장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모두 구 관장이 그동안 하나둘 수집한 소장품들이다.

구 관장의 소장품은 이뿐만이 아니다. 이곳에 전시된 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성문화 관련 수집품뿐만 아니라 국내외 현대작가 작품도 수백 점 소장하고 있다. 최근에도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한 압수 미술품 경매에서 30여점을 낙찰받았다. 개중엔 서양화가 변종하(1926~2000)의 작품도 있고 전재용이 그린 작품도 있다.

지난 6월 3일 아침 개관을 앞둔 에로틱아트뮤지엄에서 만난 구 관장은 자신을 ‘미술품 딜러’라고 소개했다. 에로틱아트뮤지엄은 ‘93뮤지엄’ 별관에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93뮤지엄은 구 관장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든 곳이다. 명화 작품들을 패러디해서 다양한 착시효과를 노린 ‘트릭아트’로 요즘 주말이면 사람들이 줄을 잇는 곳이다. 올해로 개관 10주년을 맞은 93뮤지엄이 지난해 기획전으로 마련했던 성문화 전시가 반응이 좋자 아예 별관에 별도의 박물관을 만든 것이 에로틱아트뮤지엄이다.

	에로틱아트뮤지엄 전시실 전경.
에로틱아트뮤지엄 전시실 전경.
구 관장은 25년 전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갤러리 포커스를 열면서 미술계에 뛰어들었다. 헤이리로 온 것은 2004년이다. 헤이리가 조성될 때부터 참여해 건면적 2080여㎡(약 630평)의 공간에 3층 건물 2개 동을 짓고 자신의 소장품들로 꽉 채운 것을 보면 미술품 딜러로 대단한 성공이다. 미술 시장이 극심한 침체기에서 헤매고 있는 요즘에도 건재를 과시하고 있는 그의 성공비결을 들어보자.

구 관장은 미술과는 영 거리가 먼 건국대 축산과 출신이다. 그는 대한제분 회장 비서실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딱 10년만 직장생활을 하고 내 일을 하자는 생각을 실천에 옮긴 것이 갤러리였다. 애초부터 갤러리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전공을 살려 사료대리점이나 양돈을 할 것이냐, 갤러리를 할 것이냐 전혀 다른 세 가지 길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나한테 잘 맞는 것을 선택한 거죠.”

미술은 구 관장의 못다 이룬 꿈이었다.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집안 반대로 꿈을 꺾었다. 첫 월급 타서 달려간 곳도 화랑이었다. 월급 24만원을 털어 샘터화랑에서 요절화가 손상기의 작품을 산 것이 구 관장의 첫 컬렉션이었다. 회사를 그만둔 후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고교 때 같이 그림 그리다 화가가 된 친구들이 갤러리 시작을 부추겼다. 1991년 갤러리 문을 열고 왕초보가 겁 없이 도전한 첫 전시는 내로라하는 갤러리들도 엄두를 못 내던 천재화가 이인성전이었다. 생판 모르는 신생 갤러리에 고가의 작품을 선뜻 내줄 소장가는 없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엄청 고생했죠. 편지 보내고 찾아가고 설득하고 또 찾아가고. 어렵게 작품을 빌려 첫 전시를 했는데 그 고생이 밑천이 됐어요.”

평소에 만나기도 힘든 컬렉터들이었던 이인성 작품 소장가 10여명이 그의 고객이 된 것이다. 다들 만나기도 힘든 쟁쟁한 사람들이 그에게 작품 구입을 의뢰하기 시작했다. 구 관장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객이 또 다른 고객으로 연결되면서 변종하, 권옥연 등 당시 최고 화가들의 작품을 팔 수 있는 고객 명단이 생겼다. 10년 다닌 회사에서 기획과장으로 그만둘 때 월급이 채 100만원이 안 됐을 때인데 2~3번의 전시로 얻은 수익금이 1억원을 넘었다.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돈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남들이 관심을 갖지 않던 인물화를 사 모으고 언젠가는 인물박물관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트남의 국민화가 부이 샹 파이(1920~1988)의 그림 투자도 재미를 봤다. 2년 동안 베트남을 100번 이상 드나들며 구입한 작품으로 2007년 전시를 열어 일주일 만에 60여점을 모두 팔았다.

또 한 번의 기회는 외환위기 이후였다. 판로를 찾지 못하던 중소업체 제품과 홈쇼핑이 만나면서 외환위기 이후 홈쇼핑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구 관장의 딜러 본능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화랑들이 작품들을 못 팔아 죽을 지경일 때 우리나라 최초의 케이블TV 홈쇼핑 채널인 39쇼핑(현 CJ오쇼핑)에서 마이크를 직접 들고 국내 최초로 그림을 팔기 시작했다. “운보, 월정 등 동양화부터 현대작가 작품까지 심야시간대에 작품을 팔았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제가 시작한 후에 작품이 제법 팔리자 LG 홈쇼핑에서도 가나, 현대화랑과 손잡고 방송을 시작했는데 저만큼 못했죠.”

미술 시장 밖으로 외도도 했다. 1990년대 말 벤처붐이 일 때 엔젤투자가로 참여한 것이 대박이 나서 큰돈을 만졌다. 이때 번 돈으로 조선시대 초상화, 에로틱 작품부터 갤러리를 시작할 때부터의 꿈이었던 인물박물관을 염두에 두고 값비싼 작품들을 사 모았다. 2006년부터는 미술 시장이 정신없이 뜨기 시작했다. 하룻밤 자고 나면 작품 값이 뛸 정도로 미술 시장이 과열되면서 구 관장도 큰 재미를 봤다. 소장한 작품들의 가치도 훌쩍 뛴 데다 거래도 활발했다.

청담동 화랑과 벤처투자가로 돈맛을 본 이후라 헤이리에 93뮤지엄을 열 때는 취미로 생각했다. 갤러리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인물박물관이 꿈이었지만 인물은 사람들이 영 재미없어 했다.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하고 재미있게 미술을 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지난해부터 준비해서 올 2월에 관람객을 맞기 시작한 것이 트릭아트이다. 작가들에게 의뢰해서 명화를 패러디해 재미있는 착시 그림을 만들었다. 그림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액자에서 물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날개 달린 천사가 되기도 한다. 주말이면 가족 단위의 유료 관람객 500~1000명이 몰릴 정도로 인기다. 트릭아트와 함께 순수미술 작품들을 전시해 미술을 한층 가깝게 즐길 수 있게 했다. 네 차례의 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전두환 환수 미술품만 모아놓은 전시실도 있다. 일반적인 전시회에 가면 작품에 사진기를 들이대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을 만지면 큰일나지만 이곳에서는 마음대로 그림을 만지고 그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게 한다. 몇몇 지자체에서는 제2의 93뮤지엄을 만들어달라는 요청도 해왔다고 한다.

구 관장은 자신이 딜러로 성공한 비결을 좋은 작품을 많이 사는 것이라고 했다. “일반 화랑처럼 작가들에게 의존해 전시작품 팔아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작품을 삽니다. 사 놓은 작품으로 기획전시도 하고 팔기도 합니다. 좋은 그림만 있으면 판매는 문제없어요. 결국 안목 싸움이죠. 좋은 작품, 좋은 작가를 고를 수 있는 안목, 내 돈 들여 그림을 사다 보면 안목이 생깁니다. 속아서 가짜도 사보고 수업료를 내야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있는 눈이 길러져요.”

그림 못 팔아 안달해 본 적이 없다는 구 관장이 딜러로서 그림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그림을 사는 데도 절제와 철학이 필요합니다. 2007년 그림 값이 막 뛰니까 욕심껏 있는 돈 없는 돈 긁어서 베팅해놓고 지금 울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절대 빚을 내서 사거나 오버베팅은 안 합니다. 내가 즐길 수 있는 선까지 해야죠. 그림은 팔리지 않더라도 소장하고 있으면서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작품 사서 보관하다 콩나물처럼 가치를 쑥쑥 키워서 컬렉터들이 찾으면 팔고, 안 팔려도 전시하면 되고 걱정할 일이 없습니다. 저는 그림을 살 때 일단 즐길 수 있는 그림을 1순위로, 미래가치를 그 다음으로 꼽습니다.”  조닷
  

	국내 최초 에로틱 사진. 1910년대 유리원판 필름을 복원해냈다. 
   
 
국내 최초 에로틱 사진. 1910년대 유리원판 필름을 복원해냈다.
   
                        


	성기 문양이 그려진 조선시대 청화백자.

 
성기 문양이 그려진 조선시대 청화백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