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6.13 03:01
[정순왕후가 조카와 주고받은 한글 편지 18점 발견]
순조 즉위 후 막강 권력 휘둘렀지만 아픈 조카에겐 한없이 따뜻한 모습
천주교 탄압·수렴청정 정황 보여줘
"아이는 잘 잤느냐. 오늘 귀한 날이라 내가 쓰던 벼루를 상으로 보내니 써라. 내 벼루가 좋아 먹도 마르지 않고 극히 좋다."
막강 권력을 행사하던 대왕대비도 조카 앞에선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조선 21대 왕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 조카 김노서(金魯恕)의 아들이 생일을 맞자 친필로 축하 편지를 써보냈다. "아이가 순하게 천연두를 앓고 역질 딱지를 떼니 집안의 큰 경사요 다행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 상(賞)은 가지고 놀게 윷판 보낸다. 벼룻집이 남으니 보낸다. 우유 보내니 먹어라."
막강 권력을 행사하던 대왕대비도 조카 앞에선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웠다. 조선 21대 왕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1745~1805). 조카 김노서(金魯恕)의 아들이 생일을 맞자 친필로 축하 편지를 써보냈다. "아이가 순하게 천연두를 앓고 역질 딱지를 떼니 집안의 큰 경사요 다행하기 이를 데 없다. 아이 상(賞)은 가지고 놀게 윷판 보낸다. 벼룻집이 남으니 보낸다. 우유 보내니 먹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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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순왕후는 조카 김노서가 보낸 편지(가운데 작은 글씨)의 여백에 답장을 써서 보냈다. 양옆에 큼직하게 흘려쓴 것이 정순왕후 글씨. 여유 있고 힘 있는 남성적 필치다. 오른쪽 위 작은 사진은 ‘질에게(조카에게)’라고 쓴 편지 봉투. /김연정 객원기자
◇15세 때 시집와 수렴청정까지
정순왕후는 정조의 숙적이었다. 정비 정성왕후(貞聖王后)가 죽자, 66세 영조는 무려 51살 차이 나는 어린 신부를 두 번째 왕비로 맞았다. 정순왕후다. 노론은 정순왕후를 중심으로 풍산 홍씨 가문(혜경궁 홍씨의 친정)과 연합해 사도세자를 뒤주 속에서 죽게 만든다. 왕이 된 정조는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김귀주를 귀양 보내고, 정순왕후는 대비전에 칩거했다. 정조가 급작스럽게 승하하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왕실 최고 어른이었던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이 시작됐다. 정순왕후의 6촌 오빠인 김관주 등 계비의 형제들이 정치 주도권을 장악했다.
편지에는 정순왕후가 인척을 통해 막후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상소와 관련된 내용이 많이 보인다. 조카가 "상소는 어제 바치려 했더니 길이 멀어 못 바치고 오늘 즉시 바치겠다"고 하자 "아직은 바치지 말고 사세를 두고 보아라"고 지시한다. "우의정(김관주로 추정)과 상의하거라" "형(김노충)에게 보여라"고도 말한다. 어리고 병약한 김노서가 숙모와 연락을 취하면서 친족들과 사이를 연계한 것으로 보인다.
정순왕후는 노론 벽파를 대거 등용하고, 정조 때 등용된 시파와 남인 세력을 제거했다. 이때 명목상의 시발점이 천주교 탄압. 정순왕후가 쓴 편지에 "사악한 천주학이…"라는 표현이 있다. 박재연 선문대 중문과 교수는 "안동 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벽파가 집권하는 4년 동안 정순왕후가 수렴청정하면서 친척들을 통해 어떻게 정치를 이끌어갔는지 정황이 잘 나타난다"고 했다.
◇세심하고 자상한 면모 드러나
건강에 대한 안부, 질병에 대한 편지가 대부분이다. 이 시기 정순왕후는 연로해 건강이 좋지 못했고 김노서 역시 체증을 앓았다. 아픈 조카에게 경옥고, 복분자, 인삼, 탕제, 녹용, 곽탕(미역국) 등을 보내주는 등 세심한 면모가 엿보인다.
시시콜콜 친정 일에 관여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점괘나 사주 같은 미신 얘기도 나온다. "너를 위해 불공을 드리니 그 기간에는 닭을 잡지 말라" "내 사주(四柱) 쓴 것 보내니 바깥 사람에게 물어라" 같은 문장에서 당시 왕가와 권력층의 종교적 관습을 엿볼 수 있다.
정순왕후는 순조가 15세 되는 해인 1804년 수렴청정을 거두고 이듬해 1월 6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정치적 대척점에 있었던 정조의 '어찰 정치'를 그대로 이어받았음을 보여준다"며 "19세기 초기 한글 및 언어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당시 음식이나 민속문화도 파악할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했다. 조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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