藝文史 展示室

얼핏 보면 별로지만 실은 좋은 것

yellowday 2014. 5. 25. 08:51

입력 : 2014.05.23 14:10

얼굴을 제대로 그리려면… 큰 것의 관점 지키면서… 작은 것 조율해 나가야
금융산업 위기 관리도… 시스템 위험 놓친다면… 작은 위험 막아도 허사


	김형태·전 자본시장연구원장
김형태·전 자본시장연구원장

얼굴은 시스템이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다 잘생겼는데 얼굴 전체로 보면 별로다"는 말을 흔히 한다. 바로 얼굴이 부분의 단순한 합 이상, 즉 시스템이란 뜻이다. 얼굴을 제대로 그리려면 이 얼굴 시스템을 잘 그려야 한다.

인체의 구부러진 모습에서 눈·코·입을 본 구니요시

사람의 얼굴은 인체 중에서 가장 개성이 강한 부분이다. 인물화라는 분야가 따로 있을 정도로 화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아르침볼도는 눈·코·입과 모양이 비슷한 채소와 과일을 찾아내고 독창적으로 결합해 사람 얼굴을 그렸다.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작품 '얼핏 보면 무섭지만 실은 좋은 사람이다'
우타가와 구니요시의 작품 '얼핏 보면 무섭지만 실은 좋은 사람이다'

일본 에도 시대 판화가인 우타가와 구니요시는 구부리고 있는 신체 모양을 활용해 얼굴을 그렸다. 1847년에 완성한 작품 '얼핏 보면 무섭지만 실은 좋은 사람이다'를 보자. 팔을 양쪽으로 벌리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사람이 코 모양이 된다. 구부리고 있는 두 사람이 이마를 형성하고, 그들이 입고 있는 검은색 팬티가 눈썹이 된다. 벌리고 있는 입 또한 손을 앞으로 뻗쳐 위를 받치고 있는 사람의 몸동작으로 표현했다. 펼쳐진 손바닥도 두 사람이 포개져 누워 있는 형태로 표현됐다. 정말 독창적이지 않은가.

작은 것을 합해 큰 것을 만들기는 쉽다. 단순한 모양을 결합해 복잡한 모양을 만들기도 쉽다. 하지만 그 반대는 정말 힘들다. 구니요시 그림이 높게 평가받는 이유다. 몸이라는 정형화된 윤곽을 통해 눈·코·입을 구현하고 얼굴 형태를 창출한다는 것은 엄청난 상상력을 요구한다. 그래서 구니요시 그림에선 눈·코·입을 표현하기 위해 몸의 모양이 휘어지고 구부러져 있다. 휘어지고 구부러져야 큰 것으로 작은 것을 그릴 수 있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큰 권력이 국민에게 친근한 얼굴로 다가가려면 많이 휘어지고 구부러져야 한다. 구니요시 그림처럼 정치가 옷을 벗고 맨몸으로 휘어지고 구부러져야 '얼핏 보면 별로지만 실은 좋은 정치'를 그려낼 수 있다.

위험도, 투자도 큰 것 관점에서 작은 것을 볼 수 있어야

위험의 관점에서 보면 개별 기업의 위험은 작은 위험이고, 경제 전체의 위험은 큰 위험, 즉 '시스템 위험'이다. 개별 기업의 작은 위험들을 단순히 합한 것이 시스템 위험이 된다면 문제는 단순하다. 하지만 개별 기업의 작은 위험을 잘 관리해도 시스템 위험이란 큰 위험을 막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큰 위험을 먼저 생각하고 다음에 이와의 관련성하에서 작은 위험을 규제·감독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를 '거시 건전성 규제(Macro-Prudential Regulation)'라고 한다. 구니요시가 커다란 몸을 활용해 세밀하게 얼굴 각 부분을 그렸듯이, 거시 건전성 규제는 커다란 시스템 위험 관점에서 작은 위험을 바라보고 그린다.

투자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주식을 편입한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을 때, 중요한 것은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이지 개별 주식 하나하나의 수익이 아니다. 개별적으로는 안 좋아도 전체 포트폴리오에 도움이 되는 주식이라면 투자해야 한다. 반대면 서슴없이 털어내야 한다. 구니요시 작품 제목처럼 '얼핏 보면 안 좋지만 실은 좋은 투자 대상'을 발굴하는 것이 진정한 전문 투자자다.

 


	옥타비오 오캄포의 그림
옥타비오 오캄포의 그림

나뭇가지와 새를 통해 얼굴과 모성애까지 그려낸 오캄포

옥타비오 오캄포란 화가는 얼굴과는 전혀 관계없는 나뭇가지, 그리고 날아가는 새를 통해 얼굴을 표현했다. 얼핏 보면 나무 둥지로 날아드는 새 세 마리를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이 세 마리는 각각 눈·콧구멍·입술을 나타내고, 왼쪽의 나무 몸통과 줄기는 여자 얼굴의 윤곽을 나타낸다. 특히 기발한 것은 왼쪽 나무 몸통 속에 파인 새집 속에서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기다리고 있는 새끼들이다. 오캄포가 진정 그리려 한 것은 나무도 새도 아닌 여자의 얼굴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일반적인 여자가 아니라 새끼들에게 열심히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성애를 상징하는 여인이다.

금융 산업을 '얼굴 산업(Face-To-Face Business)'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이 TV나 스마트폰을 살 땐 상품의 질을 중요시하지 만든 사람의 얼굴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품질만 좋으면 되기 때문이다. 금융 상품은 다르다. 자산 관리 상품이든 투자 상품이든 구매자가 서비스를 받기 때문이다. 계속 물어보고 조언받고 미래를 담보해야 하니 그만큼 얼굴, 즉 신뢰가 중요하다. 금융회사가 비즈니스를 통해 무엇을 그려내든 결국은 금융회사 자신의 얼굴로 귀착된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