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푸저우서 무용극 '배비장전' 공연
"한국 TV 사극 많이 봤어요. 무용극은 어떨까 기대돼요." 여대생 슈샤오메이(24)씨가 '구가의 서' 같은 드라마 제목을 발음하며 눈을 반짝일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회사원 우춘옌(24)씨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으로 친구들끼리 공연 소개 영상도 공유했다"고 했을 때,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11일 중국 푸젠성(福建省) 성도 푸저우(福州). 한국인 관광객도 별로 없고, 한국 교민은 겨우 40명 정도인 이곳에도 한류(韓流)는 닥쳤다. 이날 오후 8시(현지 시각) 푸젠대극원은 전통무용극 '배비장전'을 보러 모인 현지 주민 5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시장 개척을 위해 푸저우까지 날아온 '배비장전'은 정동극장의 한국 전통공연 브랜드 '미소'의 두 번째 시리즈. 즉석 연주되는 기악·풍물과 무용을 한데 어우르는 무언극으로, 현재 서울 정동극장에서 상설 공연 중이다. 이름처럼 여색(女色)에 취약한 하급 양반 배걸덕쇠가 신임 제주 사또의 수행원인 비장(裨將)으로 발탁되고, 사또가 장난 삼아 제주 기생 애랑으로 하여금 유부남 배비장을 유혹하게 해 망신을 준다는 줄거리다.
- 11일 중국 푸젠성 푸저우 푸젠대극원 무대에 오른 한국 전통무용극 ‘배비장전’. 볼품없는 양반을 조롱하는 조선시대 후기 고전소설을 각색했다. /정동극장 제공
곳곳에 버라이어티도 있다. 신임 사또 환영식 장면에선 사물놀이패가 객석 뒤에서 등장해 한바탕 흥을 돋우더니, 상모꾼이 12발 상모를 돌리며 쪼그렸다가 뛰며 서커스에 가까운 퍼포먼스를 펼친다. '버나 돌리기'도 선보이는데, 원반을 나무 막대로 돌리는 묘기다.
타이틀롤은 배비장이지만, 관심은 애랑에게 집중된다. 배비장을 유혹하기 위해 속적삼과 속치마만 입고 계곡에서 목욕을 하는 아찔한 자태가 큰 이유다. 욕정에 눈이 먼 배비장이 애랑의 치마를 벗기는 장면도 마찬가지. 치마를 벗길 때마다 속치마가 계속 나오는데, 객석에서도 탄식 비슷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70분간의 공연이 끝났다. 정현욱 정동극장장이 "매 장면마다 박수가 나오는 건 처음 봤다"며 웃었다. 14~15일엔 무대를 상하이로 옮긴다. 공연장을 나서던 회사원 션후이주안(23)씨가 "신나는 경험이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로 친구들에게 오늘 공연을 얘기해줄 것"이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